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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l 20. 2023

나는 괜찮을거라는 착각 - 현직교사

-이토록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글이 있었나 싶습니다. 최근 연이어 일어나는 교권 추락의 사태를 보며, 저 또한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교사로서, 용기 내어 목소리를 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몇 해 전부터인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교권추락, 악성민원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상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내가 떳떳하면,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교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만이었다.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과 자만을 증명하듯, 나는 현재 악성민원으로 교권을 명백히 침해받고 있는 중이다.


구체적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악성 민원을 겪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교사는 교사라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죽을힘을 다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하루는 너무 지치고 답답해서 사건 관련 장학사님께 여쭤봤다.

이렇게 억울한데
정말,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나요?

돌아오는 답변은, 교사의 신분으로는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더욱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학생의 신상이 공개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기가 찰 노릇의 악성 민원의 내용을 공개하는 일도 안된다고 했다. 학부모가 여기저기 넣고 다니는 악성 민원에, 아이 둘을 재우고 밤을 새 가며 답변서를 제출하고 나면 허탈함에 웃음이 밀려왔다. 이렇게 온 힘을 다해 나의 무고함과 결백을 밝히고 난들, 그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거의 무고죄도 성립되지 않는다.)


교사는 아주 조그만 아동학대의 여지만 있어도 벼랑 끝으로 몰린다. 그러나 학부모는 명백한 교권침해를 가해도, 그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모욕적인 폭언들과 폭력과 다름없는 행위들을 공공연하게 보여도, 학부모들은 제제받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 개인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언제든 ‘운이 나쁘면’ 교권 침해를 쉽게 받을 수 있다.




형편이 이러하니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을 “애써”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써”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사의 손발을 모두 묶어놓고는, 모든 책임을 부여하면, 무슨 수로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는 배우고 있다.
 책임만 주고 권리를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예컨대, 아주 흔한 사례로 한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며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떠들거나 장난치는 학생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1.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의 이름을 모두가 알도록 불러서도 안된다.-그 학생의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교사의 수치심은?)

2. 그 학생을 뒤에 내보내서도 안된다.-학생의 학습권을 박탈하므로(교사의 수업권은?)

3. 그 학생을 혼내기도 힘들다.-아이의 정서적인 불안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교사의 정서적 불안은?)


결국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못 본 척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뿐이다.




애써 바로 잡고, 힘들여 고쳐 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런 교육현장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루를 별 탈없이 무사히 넘기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학교에, 미래는 없다.


교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존경과 존중, 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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