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온 학교는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5년 만에 돌아온 학교현장은 질서, 예의, 규칙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처참한 현상의 이유는, 교사가 기본적인 것들조차 마음 놓고 가르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이들을 줄을 세워 이동하려는데, 역시나 떠들기만 할 뿐 줄을 서지 않았다. 조용히 하자, 줄 똑바로 서자, 선생님 보자,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아 한참을 출발을 못하고 있자, 지나가던 선배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줄 좀 안 서면 어때. 그냥 가요..”
그 말을 하며 나를 보고 찡긋하는 선배교사의 표정 안에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키는 수많은 말들을 머금고 있다.
어떤 순간에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상냥해야만 하는 말투와 표정으로,
아이들의 몸에 손이라도 잘못 닿았다가는 큰 일어난다는 걱정으로,
가지각색의 그 수많은 아이들 모두를 바르게 끌고 간다는 것,
이제는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너도 나도 알고 있잖아,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5년 전의 나는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고 싶지 않아 늘 바둥거렸었다. 졸고 있는 학생에게는 일어나라고 소리도 지르고, 잠시 뒤에 서 있어 보자고 격려도 하며, 어떻게든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우리 반 모두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다. 뒤에 서있게 하는 건 학습권 박탈, 소리를 지르는 건 정서적 학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허공에 대고 조용히 하자, 선생님 봐줄래가 전부였다. 모두를 끌고 가기엔, 내가 가진 힘이 너무 적었다.
수업시간이면 옆친구와 떠들기 바쁜, 수업태도가 엉망인 학생을 지도했더니, 왜 자기 애를 안 예뻐하냐며 이러려고 교사했냐는 학부모의 말에,
힘든 사정의 친구를 자꾸 놀려, 학교에서도 지도했으니 가정에서도 지도해 달라는 나의 부탁에, 선생님을 만나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됐다는 학부모의 말에,
나는 점점 포기하게 됐다.
떠들면 어때,
집중 안 하면 어때,
친구 좀 놀리면 어때,
그러면 어때, 괜찮아,라며 나를 애써 스스로 설득해야만 했다.
교실에는 먹다 남은 우유로 우유 냄새가 가득하다. 우유 하나 먹이는 것조차 교사의 권한 밖이라, 스스로 먹겠다 신청한 우유조차 얼마나 먹는지는 각자의 일이란다. 우유통엔 오늘은 이만큼만 먹겠다며 남은 우유와, 오늘은 이마저도 먹지 않겠다며 손도 안 덴 우유가 가득하다. 아이들이 집에 간 뒤에도 여전히 무거운 우유통을 들어 밖으로 내놓으며, 내 마음도 늘 그만큼이나 무겁다.
학교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초등학생이 줄 좀 안 서면 어때,
그런데 바르게 줄 을 서고,
수업시간에는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친구를 배려하는 자세를 배우고,
규칙은 지키려 노력하는,
그런 것들은 그럼 언제 배워야 할까.
누가 가르칠 수 있을까.
교사에게 묻는 책임과 의무가 가혹하리만큼 무거워질수록, 아이들을 향한 나의 진심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