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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l 27. 2023

1학년이 칠판에 쓴 글을 보고 울고 말았다.

제 이름이 임녀정은 아닙니다.

악성민원으로 며칠 째 마음이 힘든 날들을 보냈다. 장학사님과 통화를 하고, 교육청에 답변서를 제출하고 나면, 너덜너덜해진 나와 마주하기 일쑤였다.


그날도, 장학사님께 걸려온 전화를 잠시 받으며, 나를 온전히 소진시키고는 반으로 돌아왔다.


앞문을 열고는 칠판을 보는데, 부끄러울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우리 반에서 한글이 제일 부족한 아이 둘이 있다.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함께 공부하던 아이들이었다. ㄱㄴㄷ도 제대로 구분 못하던 그 아이들이, 나에게 무려 편지를 쓰고 갔다. 꾹꾹 눌러쓴 글씨 하나하나에 넘치도록 큰 사랑이 담겨 있다. 내게 배운 한글로, 나를 위로한다.


꼭 선생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컸어요
하는 것 같다.


저토록 서툰 짧은 글에서, 나는 또다시 교사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대부분의 교사는 그렇다. ㄱㄴㄷ도 모르던 아이들을, 1학기 내내 가르쳐 삐뚤거리며 마음을 담은 글을 쓰게 되면, 그걸로 충분하다.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내가 가르친 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들로부터 가해지는 민원과 폭력으로부터 상처받고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는 곳은 또 어김없이 좋은 학생과 좋은 학부모님들이다.


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달려와 있는 힘껏 안아주는 아이에게서,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을 준다며 놀지도 않고 그림을 그려오는 아이에게서,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주말 동안 보고 싶을 거라고 속삭이는 아이에게서,


우연히 교문에서 만날 때면 늘 환하게 웃어주는 학부모님들에게서, 아이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학부모님들에게서, 어쩌다 한번 하는 연락에도 조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학부모님들의 배려에서,


나는 또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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