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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Jul 28. 2023

시댁 문 앞까지만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문 앞에 놓고 도망친 아이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님 시아버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자주 무언가를 사주신다. 어린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물론이고,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특별한 이유를 덧붙여 선물을 주신다.


얼마 전에도, 아이들이 갖고 싶던 것들을, 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사주셨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선물을 받은 다음날 아침, 어제 받은 선물들로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다가 문득, 아이들이 당연하게 받지 않고 감사함을 아는 어린이, 받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주는 즐거움도 아는 어린이로 자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을
 사서 몰래 갖다 드리고 올까?
산타할아버지처럼.” 제안을 했다.

내 제안에 아이들은 이미 흥분 상태다. 너도 나도 선물을 주고 싶다며 신이 났다. 글을 아는 첫째는 편지까지 쓴다.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집 앞 마트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하나씩 사라고 했다. 아이들은 누룽지와 강냉이를 하나씩 들고는 계산대 앞에 선다.


각자 선물을 하나씩 들고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할머니집까지 가는 내내 할머니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우리 발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우리 냄새를 맡지는 않을까, 발소리를 죽이고 숨도 참아가며, 그렇게 할머니댁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문 앞에 아이들과 조심조심 선물을 내려놓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달라고 성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문 밖을 보세요!

소리치는 아이들. 시어머님 시아버님은 편지와 선물을 보시고는 고맙다며 연신 싱글벙글이시다. 감동이라며, 얼굴이라도 보고가지 그냥 갔냐며.


어쩌면 받은 것들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 턱없이 부족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렇게나 고마워하고 행복해하신다. 내가 아이들의 편지 한 장, 다정한 말 한마디에 고마워 눈물을 훔치는 것과 같겠지.


5천 원으로 무려 6명에게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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