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전 악성민원에 시달렸다. 내가 신문고, 국민인권위, 교육청, 수많은 곳에 답변을 하는 사이, 꽃다운 나이의 어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같은 1학년, 학부모의 민원, 너무도 비슷한 처지에 몸이 떨렸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너무도 많았지만, 참고 견뎠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떳떳한데,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학교 관리자분들도, 동료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그래도 문득문득 미치도록 화가 나고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관리자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좀 더 어리고 여렸다면, 나도 지금과 달랐을 수 있다고.
힘든 시기를 잘 버티고 방학이 찾아왔다. 물론 해결된 건 없었지만, 그래도 잠시 잊고 떠나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방학 중간중간 사안과 관련된 일들로 전화를 하고 보고를 하는 건 필수였다.
방학이 끝났다. 내심 기대했다. 이렇게 시국이 난리인데, 같은 한국에 살고 있다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텐데. 그래도 사람이라면 일말의 반성, 후회 비슷한 것을 하지는 않았을까.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못 이기는 척 아이를 그냥 보내면, 고작 1학년인 아이만 생각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무단결석 2일째, 학교에서 우연히 학부모님을 마주쳤다. 막말, 고성, 삿대질, 위협 등 나야말로 학교폭력을 당한지라 학교폭력 피해자의 행동 습관이 고스란히 나와버렸다. 가슴이 뛰고 위축된다. 시선을 피하고 몸을 숨겼다. 그러다 문득 그래도 내가 선생님인데, 학부모한테 인사는 해야지 하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힘겹게 건넸다.
그러자 그들은 태어나 받아본 적 없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정확히는 위아래로 훑어보며 째려본다.
나 같은 범생이들에게 학부모 악성민원은,
학창 시절에도 겪어본 적 없는 학교폭력이다.
나중에 학교에 온 사유를 들으니, 9월에 새로 부임하시는 교장선생님이 오시면 학급교체 혹은 담임교체를 다시 제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단다. 그전까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며-
역시나였다. 왕의 DNA 학부모가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들었다.
진상은 결코 스스로 진상인지 모른다.
어제 본 pd수첩에서 나온 선생님들이 하나 같이 말한다. 아무 근거 없는 악성민원에도 교사들은 스스로를 해명하고 감내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그 말 그대로다. 그리고 학교는 pd수첩에서 처음 조명한 무려 1년 전의 아동학대 교사로 몰린 선생님 이후로 그대로다.
pd수첩을 보고 밤새 뜬눈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내가 잘못한 것은,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 아이를 지도하고, 해당 학부모와 전화하며 학교에서 더 열심히 지도할 테니 집에서도 도와달라고 말하자, 내 아이가 이렇게 된 건 선생님 때문이라며, 폭언과 고성을 내뱉는 그 순간을 “녹음”하지 못하여, 내 피해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학부모의 전화는 자동 녹음이 되는 어플을 켜고야 받는다.
최근 학교에서 내려오는 공문을 살펴보니, 저경력 교사 민원 관련 연수, 학급 운영 연수 등이 마구 내려온다. 우리가 민원에 대응하는 법을 몰라서, 학급은 운영하는 법을 몰라서, 발생한 일들인가 말이다.
학교는 여전히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