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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Aug 30. 2023

1학년 담임이 말하는 1학년 아이들의 신기한 순간들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에 놓인 가방 하나. 저 아이는 대뜸 책상 줄을 맞췄다.

“아무리 나쁜 어린이도 착한 어떤 어른보다 낫다.”


아이들을 직접 기르고 가르치며 생각했다. 물론 때때로 들려오는 흉흉한 이야기들은 나의 생각을 흔들리게도 하지만, 대체로 아직은 위의 문장에 동의한다.




한 아이가 있다. 학기 초 상담에서 아이의 어머님은 아이가 너무 예민해서 힘들다고, 집에서도 가족들과의 사이가 너무 안 좋다고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며칠 뒤인가 우리 반 한 아이가 우유를 온 교실에 쏟았다. 우유는 자리에 앉아서 먹으라는 나의 지도를 무시한 결과였다. 1학년답게 소리를 지르고, 나에게 달려와 이르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한 아이가 얼른 사물함에 가서 자기 휴지를 가져온다. 바로 그 예민하다던 아이. 그 아이는 내가 시킨 적도 없건만, 우유를 쏟은 아이의 자리를 닦고 또 닦는다. 예민한 아이의 반전 모습이다.


물론 집에서와 학교에서의 모습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친구가 우유를 쏟자 쏜살같이 휴지를 뽑아와 묵묵히 닦던 그 모습은, 결코 변하지 않는 그 아이의 본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아이가 있다. 똑똑하고 야무지지만 내성적인 아이라 주변의 친구나 상황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아이였다. 하루는 늘 아이들보다 20분은 일찍 출근하여 앉아있는 교실에, 그 아이가 들어온다. 오늘따라 일찍 온 것인지, 나와 잠깐의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더니 다시 일어나, 대뜸 텅 빈 교실에서 친구들의 책상 줄을 하나하나 맞춰준다.


깜짝 놀란 나는 아이에게 갑자기 왜 줄을 맞추냐 물으니, 그냥 웃을 뿐 대답이 없다. 유난히 일찍 학교에 온 그날, 아이의 눈에는 삐뚤삐뚤한 책상에 앉을 친구들이 염려되었던 것일까.




1학년 아이들과 생활을 하다 보면, 신기한 순간들이 많다. 다 큰 아이들이라면, 어른이라면, 내 일이 아닌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해낼 수 있을까. 고학년 아이들을 주로 담당했던 나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예쁨 받으려고 하는 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이런 “날 것”의 순간들이 신기하다.


“원래 이런 아이였나?”싶다가 도,

“아이들은 원래 이렇지”라고 스스로 되뇌인다.


학교는 아이들 때문에 다닐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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