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가 친구에게 “나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누가 봐도 나쁜 행동. 예전 같으면 당장 그 아이를 불러 따끔하게 혼을 냈을 텐데, 체감상 1시간과 같은 약 10초 간의 망설임의 순간이 흐른다. 악성민원의 후유증이다.
망설인다. 혼내지 말까. 넘어갈까.
혼을 내야 하는데, 혼을 내기를 망설이는 나를 마주한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악성민원에 시달린 교사의 민낯이다.
10초 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아이를 불렀다. 잘못한 행동을 차근히 알려주고, 아이를 마주 보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는 약속까지 친히 받아낸다. 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하지만, 분명 앞으로도 몇 번의 손가락을 더 걸어야 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가 특별한 문제아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아이는 우리 반에서 꽤 멋진 아이다. 다만 세상 모든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잘못을 저지른다. 그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교사는 적절하게 개입하여 지도하고 바르게 교정해 준다. 물론 똑같은 행동으로 적어도 10번의 훈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바뀐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은 나와의 치열한 1년을 보내고 나면 결국 바뀌더라. 그게 아이들을 대하는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를 바르게 바꿀 수 있다는 것. 이미 모든 생각과 습관이 고착된 성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아이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마음속에서 들끓는 원망 내지 한탄을 뱉으며, ”내가 교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더욱 정확히는 나는 언제든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했다. 혼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혼내겠다고 결심한 순간 마음먹은 다짐이었다.
작금의 학교는, 교사가 학교에서 잘못한 아이들을 바로잡기 위해 혼내기 위해서는,
“교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사를 그만둘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잘못한 아이를 진정으로 혼낼 수 있는
교육 현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하길 포기한다.
나도 두 아이들을 키워서 알지만, 아이들은 집에서조차 단 하루도 혼나지 않는 날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들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혼이 나고, 또 다음 날에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또 혼이 나고, 그러며 서서히 변한다.
최근 악성민원을 넣은 그 학부모의 아이도 그랬다. 그 아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행동의 교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코 밉지 않았다. 그냥 나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한 아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내가 혼낼 때, 언제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내가 지적한 행동을 잠시나마 고치려 노력했다. 1학년이면 그거면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밉지는 않다. 오히려 그 아이가 불쌍했다.
아이가 혼나야 할 상황에,
왜 우리 아이를 그렇게 혼냈냐며 악을 쓰는 부모는 결국 그 아이가 바르게 나아갈 기회를 빼앗은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왜 혼났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의 밑에서 아이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그날 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언제든 교사를 그만둘 수도 있어.”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그래. 원하는 대로 해.”라고 묵묵한 믿음을 표해준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이 혼날 행동을 하면, 혼내려 한다.
그러다 교사를 그만두게 돼야 한다면,
그냥 교사를 그만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