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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에 갔다가 아동학대자로 의심받다.

정당한 의심

by 둥아리

둘째가 12개월 즈음,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사람들을 물어 버리던 시기가 있었다. 이가 나려고 하는 시기라 한창 이를 간지러워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른들이야 쉽게 물리지도 않고, 물려야 조금 아프면 그만인데, 첫째는 달랐다. 고작 20개월 오빠인 첫째는 동생과 다투는 일이 많았고, 둘째는 그럴 때면 오빠를 물려고 달려들었다.(물론 다행히도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며 그런 나쁜 버릇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방심한 틈을 타 둘째가 또 오빠를 물었다. 근데 그 위치가 물기도 참 힘들어 보이는 갈비뼈 근처였다. 옷을 들춰야만 보이는 곳. 게다가 살이 참 여린 곳이라 상처도 꽤나 붉게 났다.


며칠 뒤 첫째가 감기에 걸려 소아과에 갔다. 여느 때처럼 옷을 올리고 진찰을 받는데, 갑자기 소아과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나를 쳐다보며, 이 상처는 뭐냐고 묻는다. 마치 여기는 아이 스스로 상처낼 수 없는 부윈데, 내가 꼬집은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선생님에게, 손사래를 치며 둘째가 있다고 황급히 말했다.


둘째가 문 거예요. 동생이 있어요. (믿어주세요.)



그렇게 웃픈 해프닝이 끝나고 병원을 나서는데, 의심을 받았건만, 웬일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혹여나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신고를 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이들을 '아동학대 의무 신고자'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교사와 의사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그 의무를 소홀히 하여, 돌이킬 수 없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정당한 의심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가 이 병원에 온다면, 적어도 외면받진 않겠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도 들었다.


매일 같이 아동학대 사건이 들려온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는 좀 더 일찍 그 끔찍한 상황에서 아이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누군가는 나일 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늘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외면하지 있지는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아동학대를 조금이라도 감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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