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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by
돌강아지
Dec 21. 2021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잘랐다
.
집에서 언니가 잘라줬다
.
얼마
전에도 언니가
긴 머리에서 단발로 잘라 줬었는데
그때 참 예쁘게, 마음에 들게 잘 됐었다
.
일명 웬디 머리로.
금세 길기도 했고 더워서 언니 보고 또 잘라 달라고 했다
.
언니가 이번에 내가 해달라는 머리는 이상할 거라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해달라고 했다가
정말 망했다.
언니 말 들을
걸.
이런 머리는 꿈에서나 자르고 절규하면서
깨어났던 그런 머리다. 종종 그런 꿈을 꾸다가 절규하며 일어나고는
꿈이라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꿈이 아니다
.
이 머리가 이번에는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
꿈은 이루어진다!
머리를 감자칼로 깎은 것 같다...
저녁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머리를 잘랐다고 하니까
보고 싶다고 해서 영상
통화를 했다
.
친구는 동네 산책하다가 가로등 불빛으로,
나는 마당에서 창밖으로 나온 방
불을 가로등 삼아
영상통화를 했다
.
그런데 친구는 내 머리보다 내 옷에 더 놀라는 것 같았다
.
화려한 꽃무늬 옷이 아줌마
같다고 했다.
시장에서 샀는데 어떻게 알았지
?
근데 이뻐서 산거다.
그리고 아사면이라
진짜 시원하고 편하다.
원래 원피스였는데 번잡스러워서
잘라서 티셔츠로 만들었다.
마당을 날아다니는 풍뎅이와 방충망에 붙은 나방들,
멀리 운동장의 불빛과
해가 넘어간 언저리를 보기도 하고
모기가
물까 봐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며 통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네 동네의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었다
.
친구도 우리 동네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
풀벌레 소리 같은 것도 들린다고 했다
.
옆에 밭에서 나는 소리였을까
.
시원한 초여름 저녁, 기분 좋은 통화였다
.
그래도
친구가 그 옷은 밖에서는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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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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