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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by 돌강아지

머리를 짧은 단발로 잘랐다.

집에서 언니가 잘라줬다.


얼마 전에도 언니가 긴 머리에서 단발로 잘라 줬었는데

그때 참 예쁘게, 마음에 들게 잘 됐었다.

일명 웬디 머리로.


금세 길기도 했고 더워서 언니 보고 또 잘라 달라고 했다.

언니가 이번에 내가 해달라는 머리는 이상할 거라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해달라고 했다가 정말 망했다.

언니 말 들을 걸.


이런 머리는 꿈에서나 자르고 절규하면서 깨어났던 그런 머리다. 종종 그런 꿈을 꾸다가 절규하며 일어나고는

꿈이라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꿈이 아니다.

이 머리가 이번에는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꿈은 이루어진다!


머리를 감자칼로 깎은 것 같다...


저녁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머리를 잘랐다고 하니까

보고 싶다고 해서 영상 통화를 했다.

친구는 동네 산책하다가 가로등 불빛으로,

나는 마당에서 창밖으로 나온 방 불을 가로등 삼아

영상통화를 했다.


그런데 친구는 내 머리보다 내 옷에 더 놀라는 것 같았다.

화려한 꽃무늬 옷이 아줌마 같다고 했다.

시장에서 샀는데 어떻게 알았지?

근데 이뻐서 산거다.

그리고 아사면이라 진짜 시원하고 편하다.

원래 원피스였는데 번잡스러워서 잘라서 티셔츠로 만들었다.


마당을 날아다니는 풍뎅이와 방충망에 붙은 나방들,

멀리 운동장의 불빛과 해가 넘어간 언저리를 보기도 하고

모기가 물까 봐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며 통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네 동네의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었다.

친구도 우리 동네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벌레 소리 같은 것도 들린다고 했다.

옆에 밭에서 나는 소리였을까.

시원한 초여름 저녁, 기분 좋은 통화였다.


그래도

친구가 그 옷은 밖에서는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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