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오백 원만 주실 수 있나요
by
돌강아지
Dec 22. 2021
오늘 되게 참신한(?) 일을 겪었다.
마트 갔다가 돌아오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학생이 나보고
오백 원 좀 달라고 했다.
천원도 아니고 만원도 아니고
오백 원.
천원이 필요한데
오백 원 밖에 없다면
서
오백
원 좀 주실 수 있냐고 했다.
되게
파워 당당하고 바르게.
손에 쥔
오백 원도 내게 보여줬다.
마치 원래부터 알던 사람처럼 내게
다가와서
자신 있게 말하는데 오히려 내가 우물쭈물하고 당황했다.
중학생쯤
되어 보였고 인상은 밝고 예의 바르고
얼굴은 하얗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
거짓말하거나 나쁜 애처럼 보이지 않았다
.
뭔가 쿼카 같은 귀여운 동물 같았다
.
누군가에게 돈을 뜯겨(?) 본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때 노는 애들이 남자 친구를 사귀면
사귄
지 22일 됐다고 투투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이 백 원,
100일이라고 백 원인가 천 원을 달라고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도 다 달라고 했었다
.
주는 애들도 있었고 안 주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자발적이라기엔 애매하게... 줬던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또 중학생한테 돈을 줬다
.
이번에는 도움이지만.
지갑에서 오백 원을 찾았는데
오백 원이 없어서 천 원을 줬다
.
주면서 그 찰나에,
천 원을 주면 저 아이가 자기의 오백 원을 내게 거슬러 줄 것인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천 원을 주자마자 학생이 반짝 빛나며
오! 감사합니다!! 하고는 떠났다
.
뭔가
어린아이 같았다.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저런 상황에 오백 원을 안 주는 사람도 없을 거다.
천원은 왜 필요했을까?
뭔가 급하게 필요하니까 모르는 사람에게 달라고 한 거겠지?
진짜 궁금하다
.
어른이 되면 저런 부탁도 잘 못하거나 변질되고
경계하는데 학생을 보니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파워 당당해
서 인상 깊다.
저런 자신감이면
뭘 해도 될 듯...
그 학생을 보며 나도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데..
.
설마 내가 13번째
오백 원은 아니겠지...?
고구마를 삶아 먹었다.
꿀고구마.
따끈따끈할 때 먹으니까 맛있었다
.
이제 날이 추워지면서 가스불을 오래 쓰면
집에 수증기가 가득 찬다
.
거울에도 미닫이 문에도 창문에도 주르륵.
고구마 한번 삶았더니 목욕탕이 됐다
.
keyword
겨울
고구마
일기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돌강아지
'노지월동' 매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꽃이 피는 다년생의 그림일기
구독자
17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하늘에서 독수리 나는 거 본 적 있어?
비가 온다 잠이 온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