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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원만 주실 수 있나요

by 돌강아지

오늘 되게 참신한(?) 일을 겪었다.

마트 갔다가 돌아오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학생이 나보고 오백 원 좀 달라고 했다.

천원도 아니고 만원도 아니고 오백 원.


천원이 필요한데 오백 원 밖에 없다면

오백 원 좀 주실 수 있냐고 했다.

되게 파워 당당하고 바르게.

손에 쥔 오백 원도 내게 보여줬다.


마치 원래부터 알던 사람처럼 내게 다가와서 자신 있게 말하는데 오히려 내가 우물쭈물하고 당황했다.

중학생쯤 되어 보였고 인상은 밝고 예의 바르고

얼굴은 하얗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거짓말하거나 나쁜 애처럼 보이지 않았다.

뭔가 쿼카 같은 귀여운 동물 같았다.


누군가에게 돈을 뜯겨(?) 본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때 노는 애들이 남자 친구를 사귀면

사귄 지 22일 됐다고 투투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이 백 원, 100일이라고 백 원인가 천 원을 달라고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도 다 달라고 했었다.

주는 애들도 있었고 안 주는 애들도 있었는데

나는 자발적이라기엔 애매하게... 줬던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또 중학생한테 돈을 줬다.

이번에는 도움이지만.


지갑에서 오백 원을 찾았는데 오백 원이 없어서 천 원을 줬다.

주면서 그 찰나에, 천 원을 주면 저 아이가 자기의 오백 원을 내게 거슬러 줄 것인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천 원을 주자마자 학생이 반짝 빛나며

오! 감사합니다!! 하고는 떠났다.


뭔가 어린아이 같았다.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저런 상황에 오백 원을 안 주는 사람도 없을 거다.

천원은 왜 필요했을까?

뭔가 급하게 필요하니까 모르는 사람에게 달라고 한 거겠지?

진짜 궁금하다.


어른이 되면 저런 부탁도 잘 못하거나 변질되고 경계하는데 학생을 보니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워 당당해서 인상 깊다.

저런 자신감이면 뭘 해도 될 듯...

그 학생을 보며 나도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설마 내가 13번째 오백 원은 아니겠지...?


고구마를 삶아 먹었다.

꿀고구마.

따끈따끈할 때 먹으니까 맛있었다.


이제 날이 추워지면서 가스불을 오래 쓰면

집에 수증기가 가득 찬다.

거울에도 미닫이 문에도 창문에도 주르륵.

고구마 한번 삶았더니 목욕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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