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슈 크렝치츠키 《Gentle Spin》 전시를 보고
감미로운 유예라고 들어봤어? 결정할 시점을 최후까지 미루기. 그러고 보면 회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시간에 가두는 일이야. 어떤 문을 열고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 문지방에 선 채로 우리를 붙들어두는 것. 시간을 나아감 정도로 여기는 세상을 무기한 멈추기. 숨을 들이쉬었는지 내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상태에서 그대로 멈 춰 라
널 기다리겠다고 작심한 데에는 환상에서 바로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소량의 허영이 작용했다 금세 낡아버릴 밧줄에 굳이 카라멜을 발라 와해되는 표면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려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는 상대를 향해 기다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수동태에 처하고 싶지 않은 최후의 외침일까 데크레셴도로 내려오는 천천한 소멸이 있음에도 일순간의 심벌즈 같은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는 앙칼진 작심
무기한으로 노리는 무디게 하기. 엔딩에 굳이라는 부사를 부착하기. 악곡으로 친다면 음악의 문을 닫는 끝세로줄을 꼭 달아야 하느냐는 질문. 음의 유효함을 측정할 수 없는 「긴 소리없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왜인지 8분의 6박자가 어울리는 곡. ‘긴 소리없음’에는 점사분쉼표 두 개를 쓸까 혹은 온쉼표를 마디마디마다 심어줄까 혹은 끝세로줄을 한없이 미뤄볼까 아니 미안한데 난 마지막 음에 붙임줄을 붙여보려고 팔을 끝까지 뻗어볼 거야
연주자를 볼 수 있는 A열 사람 그는 가까스로 볼 수 있지만 가장 멀리서부터 B열까지 만 하루만 지나도 이 곡이 끝났다고 생각할 테지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되는
누구 하나 일어나면 부산해지고
혹은 부단한 소음으로서
부단히 회자되는
박수만은 치지 못하고
회화가 지니는 붙드는 속성에 기대 점선처럼 산다 그림에 한 발 물러나 「벡사시옹」을 듣는다 반박과 번복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머릿속 대화에 얼마나 자리를 내어줬는지
팔이 떨어질 것 같다
#안다고도모른다고도못하더라도 #토마슈크렝치츠키 #tomaszkręcicki
토마슈 크렝치츠키 《젠틀 스핀》
2024. 8. 31 - 2024.10.26
에스더쉬퍼 서울
image: 토마슈 크렝치츠키, 'Good Morning(2024)'
관람일자: 2024. 10. 11
발행일자: 2024. 11. 15
*해당 글은 짐노페디 사후에 발굴된 짐노페디의 「벡사시옹(Vexations)」에 영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