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는 10년이 지나서야 꺼낼 수 있다. 대학시절 나는 페미니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를 꼽았으니까. 울프는 전쟁으로 치닫는 유럽을 비판하면서 교육받지 못한 여성으로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밖에도 그 유명한 <자기만의 방>에서는 일 년에 500파운드와 독립적인 공간이 여성의 자유에 핵심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울프의 텍스트를 읽을 때면 무릎을 탁 치곤 했지만, 난 적당히 일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그저 놀고 싶은 안일한 인간이었다. 머릿속은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 몸은 드라마 속 안온한 판타지에 기댔다. 그리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커리어에 의욕적인 여자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그와 대화할 때면 내 안의 모순을 느꼈고, 이는 불편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순전히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나는 어떤 데이트 비용이든 정확히 반반씩 부담했다. 원체 나도 칼로 자른 무의 단면처럼 말끔한 계산을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얻어먹는 여자들에 대한 그의 거부감 탓도 있었다. 그는 다 먹은 음식 앞에서 도통 먼저 계산할 줄 모르는 여자들을 자주 비판했다. “대체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라고 동조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접하지도 않은 가상의 여성 일반에 열을 올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때는 2009년, 혹은 2010년. 학교 앞에 별다방으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던 시기였다. 독특한 디저트를 파는 작은 카페들도 골목 구석구석 생기면서 동기들과 이를 찾아다니는 맛에 재미가 들렸다. 과제할 때도 둘에 한 번은 종이 넘기는 소리조차 예민한 열람실 대신 BGM이 나오는 이태리 젤라또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고 작업했다. 때마침 온라인에서는 ‘된장녀’라는 단어가 확산되고 있었다.
평범했던 어느 날, 우리는 그런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였다. 그는 과장된 어조로 ‘보슬아치’라고 말했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가 합성어의 뜻을 해석해줬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몇 초 뒤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순간 몸은 도살한 동물의 근육에 일어나는 사후강직처럼 뻣뻣해졌다. 네 글자는 영영 치료하지 못한 채 면역력이 떨어질 때마다 올라오는 바이러스처럼 몸에 박혔다.
단어의 태생에는 공감할 수 있다. 타인의 이득에 거리낌 없이 편승하는 태도가 불쾌하다는 뜻일 테다. 차라리 그가 타인의 호의에 냉큼 올라타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싫다,라고 풀어서 말했다면 어땠을까. 십분 공감하고 남았을 거다. 하지만 ‘보슬아치’라는 말은 의미를 떠나 ‘경멸’이 질척인다. 나는 그가 혐오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축축한 늪을 발밑에 둔 사람 마냥 찝찝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4음절은 자기 검열의 척도가 되었다. 주체적으로 결정했다고 믿는 행동 한 켠에는 회색조의 비틀린 웃음을 띤 채 곁눈질하는 남자친구-혹은 가상의 남성 일반이 상정됐다. 나의 빈약한 페미니즘은 더욱 수동태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어떤 주제도 거리낌 없이 나누는 친구와 동생에게 털어놓게 된 지는 헤어진 지 한참 지난 최근이었다. 아마도, 경멸의 언어가 겨냥하는 대상과 이를 옮기는 사람, 이를 발설한 사람 모두를 더럽히기 때문 아닐까.
타인의 모멸 섞인 눈초리에 반응하는 방식으로만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멸감을 통해서만이, 써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자나 독설을 늘어놓는 힐링 멘토들처럼, 타인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타인을 전혀 믿지 못한다는 얘기다.
김사과, <0이하의 나날들> ‘모멸감에 대하여’ 중에서 (p153)
그는 경제학도에 아는 것이 많았고, 말끔한 언변에 데이터적으로 사고하는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직관과 추론에 의존하는 내게 그의 똑똑함은 앞으로도 자주 만나지 못할 그것이었지만, 그가 지닌 공격성 또한 흔치 않았다. 당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 나를 포함해 타인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비루한 표현을 구사해야 했던 그가 서글프다. 그 단어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내 주위를 맴돈다.
결국 글쓰기의 가장 첫 번째는 나를 위한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유사한 경험을 한 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공격과 방어의 언어 대신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언어가 더 늘어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