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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Jan 09. 2020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의 진짜 뜻

관계의 유효기간을 알 수 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4 ‘시스템의 연인’을 봤다. 극 중 세계는 99.8% 확률로 짝을 찾아주는 ‘페어링’ 시스템이 지배한다. 커피숍의 진동벨을 닮은 기계는 교제할 상대를 지목하고, 관계의 유효기간도 알려준다. 짧게는 6시간, 길게는 7년 등 상대에 따라 기간은 천차만별이다. 몇 명의 상대와 교제하고 나면 ‘페어링 데이’에 진정한 짝을 만나게 된다.

연인들의 표정은 유효기간이 임박할수록 생기를 잃는다. 예정된 미래를 두고 그들은 성실하지 못하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 한 연인은 페어링 시스템에 의문을 갖는다. 아무나 짝이라고 찾아주고는, 관계에 지쳐 안주하고 싶을 때쯤 적당한 사람을 물어다 주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시스템 너머로 도망치기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조차 시스템의 예상대로였다. 이들의 탈주는 ‘998번째 반항’ 건으로 빅데이터에 기록된다. 다음 장면. 한 여성이 등장하고, 그의 손에는 페어링 기계가 들려있다. 맞은 편의 남성이 눈을 마주친 채 미소 짓는다. 극은 두 사람이 연인이 될 것을 암시한다. 두 사람은 앞서 반항 사례로 저장된 남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동일한 경로를 통해 제짝을 찾는 동시대 인간들에 대한 은유일까. 똑같은 플랫폼을 쓰면서 내게 꼭 맞는 연인을 찾는다고? 혹은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시스템에 의존하는 후대에 대한 비판인가. 우리야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5시간 뒤 헤어지다니 말도 안 된다고? 반항심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제다. 빅데이터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망까지 취합한다.
 



우리가 함께 꿈꾼 미지수의 시간

사랑하게 될 상대도, 관계가 끝나는 시점도 정해져 있다면, 결국 남은 몫은 ‘시간’ 뿐이다. 이별까지 남은 날들을 세며 사랑의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관계가 소멸하는 순간을 기준점으로 지난 시간과 남은 시간에 따라 관계의 지형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한다. D+ 아닌, D- 헤아리는 사랑의 서사. 얼마 남지 않은 시일 속에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헤어지는 시점이 정해져 있다 한들, 시간을 적절하게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아있는 나날을 센다는 피동적인 접근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젠가 끝날지 모르는 영원’을 살기 때문이다. 사랑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구분은 무너진다. 그들은 미래를 자석처럼 자신들에게로 이끈다. 그들에게 미래는 현재에 내포돼 있으며, 기다리는 미지(未知)다.
 
보편적인 개념의 시간에서 과거는 명징하고, 미래는 희뿌옇다. 사랑은 그 불투명한 시간을 현재로 끌고 와 기약한다. 연인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사랑의 내일을 희구하는 이들이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앞날은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총동원된다.


곧, 아직 오지 않은 미지수의 나날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나눠 가진 몫이 사랑의 밀도가 아닐까.




나는 앞으로 평생 널 믿지 못할 거야

드라마 전체를 지배하는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극 중 사랑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페어링 시스템이 알려주는 이별 시점을 “보지 말자”라고 제안하는 부분과 여자가 잠든 사이 남자가 이별 시점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겨울을 잊은 듯 꽃을 피우려는 마음과 봄이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이를 오간다.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을 보증하지 못한다. 사랑은 언제든 파기될 가능성을 품은 채 실천된다. 지난해 상영한 영화 <아사코>는 사랑에 관한 낯설고도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남자는 다른 남자에게 갔다가 결정을 번복하고 돌아온 여자를 받아들이며 말한다. “나는 앞으로 평생  믿지 못할 거야.” 그는 불신을 말하면서 앞날을 기약한다.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는 엄마에게 아빠의 어디가 좋았느냐고 묻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엄마는 아빠가 잘생기고 똑똑한데, 집안이 가난한 게 안쓰러웠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가 자신이 가난한 노총각임을 알고도 밍크코트를 입고 선보러 온 재수 없는 여자였다고, 때마침 소복이 쌓인 눈길에 넘어진 엄마가 희한하게 북극곰처럼 귀여웠다고 한다. 이어지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현명한 면이라고는 하나 없는 이 어리석은 이야기를, 그녀는 욕조 끝에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꼭 닮은 손으로 엄마를 꼭 닮은 발을 만지작대며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로, 그 희망의 도래를 끝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미욱한 두 사람만이 어쩌면 사랑 안에 오롯하게 생존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중에서


‘미욱하다’의 뜻을 사전에서 찾았다. ‘미련하고 어리석다’라는 전라도 방언이란다. 완결될 수 없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들에게 과연 해당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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