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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May 09. 2020

저 잘될 때만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고 해보자


진짜 친구의 기준

‘진짜 친구의 기준’. 한창 온라인에 떠돌았던 이슈다. <장례식장에 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그치. 말 한마디도 어렵고 몸 둘 바를 모르겠으니. 지인을 만나도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하면 안 된다며. 며칠 뒤엔 이런 글을 봤다. <진짜 친구는 내가 잘 될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다>. 친구 연봉이 직전보다 500만원 뛰었다고 해보자. 축하해! 남친과 깨가 쏟아지던 친구는 올해 드디어 결혼한단다. 이 드레스 어때? 너한테 딱이다! 이상하다... 어딘가 살짝 배가 아프다. 아무래도 ‘찐친’이라 하기엔 내 맘엔 불순물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비애감이 감도는, 누군가가 떠난 자리와 모두가 웃지 않으면 이상한, 축하하는 잔칫날. 하나는 숨 쉬는 것조차 어색하고, 다른 하나는 박수를 치면서도 입안에 감도는 씁쓸함까진 어쩌지 못한다. 난 자격미달 친구인가. 그러나, 세상 모든 양극단은 맞닿는다고 했다. 진짜 친구라면, “ 시집 가면   사람 없어서 어쩌냐!” 라고 솔직한 속내도 드러낼  있지 않은가. 그런 걸 보면 장례식과 결혼식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진실된 친구를 가늠하는 잣대로 바람직한지’ 따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 만나면 뭐하나, 돈이나 쓰지

나는 실업자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2월은 코로나 19가 한창이었다. 코로나는 모든 사람의 발을 붙들어 놨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사교적인 내게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한편 마음 한 구석엔 ‘백수가 사람 만나면 돈이나 쓰지. 몸 사리고 집에서 자소서나 쓰자’ 하는 맘도 생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좀 먹어가고,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했다가, 차라리 잘됐다 하면서 허공을 바라봤다. 튼튼한 자존감을 지닌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가끔 친구를 만나도 말수가 적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연스레 보내는 카카오톡 메신저도 줄었다.

일이 잘 풀리면, 그간 도와줬던 친구들에게 연락해야지! 언니한테 밥 사느라 고생한 동생에게도! 라고 생각했다.  지원서류를 내놓고 언제 열람하나, 시간 날 때마다 새로고침을 누르고, 연락 올 시점을 기다렸다. 네 번은 족히 떨어졌다. 주변에 자신 있게 밥 살 일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취업을 해야 연락을 할 텐데. 오랜만에 연락 온 동창이 청첩장을 보내면서 “진짜 결혼식 오라는 압박이 아니라 결혼하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진솔한 말을 덧붙여도, 내 시선은 남아 있는 퇴직금으로 향했다.




랍스터는 못 사지만

그러다가 생각이 원점에 미쳤다. 저 일 잘 풀리면 기다렸다는 듯 연락하는 친구라. 상사에게 시달린 일, 연인과 같은 패턴으로 싸우는 친구, 미래를 대비하기 힘든 초라한 연봉과 넘쳐나는 야근에 대한 불만처럼 도돌이표 하소연만큼이나 상황이 나아졌다고 냉큼 전화하는 사람도 퍽이나 좋겠다 싶었다. 기쁨만을 과시하는 쪽이나 슬픔만을 공유하려는 쪽이나 싫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치면 자소서 첨삭 좀 해달라고 귀찮게 군 게 썩 미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는 자기 위안에 도달했다. 물론 1000자 장문을 카톡에 보내는 일은 자제할게......

이쯤 되면 지금 초라하더라도 주변에 연락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결론이 난다. 성인이 돼서 처음 피아노의 맛을 알려준 J 선생님, 쇼팽 공연을 보러 갔다가 둘 다 길을 헤매는 바람에 콘서트홀 입구에서 3분 컷으로 회동한 언니 H, 전 회사 동료들과 문래동에서 같이 만나지 못한 B선배, 가끔 올려주는 아기 사진과 다정한 신혼 일기에 미소 짓게 하는 D선배, 15년 단짝이지만 무심한 성격 탓에 자주 연락 못하는 K까지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 선하다. 잘 되는 날을 기약하며 술이라도 사고 싶은 맘에 미룬 터이지만, 생각해보면 인생 대부분은 ‘미뤄질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P.S. 그래도 랍스터는 못 산다.






이렇게 글로는 잘 알겠음에도,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오면 당당해지고 연락하고 싶은 맘이 올라온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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