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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Jan 23. 2021

사랑에도 마케팅적 관점이 필요하다

주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말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궁금해요


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1) 여자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자문한다. 자기를 둘러싼 삶에 옷감의 견본과 부재중인 애인 외에 무엇이 있는지 돌이킨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활동들과 관성적으로 기다리는 애인 외에 자신의 흔적이 얼마나 흐릿한지를 새삼 체감한다.

여자는 초대에 응한다. 여자와 남자는 홀에서 만나고, 어둡고 북적한 음악당에 착석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남자가 말한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2) 뻔뻔스러운 대답이다. 5 문장이 채 안 되는 편지 때문에 인생까지 돌아봤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그 짧은 질문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남자의 호의를 느꼈다. 여자에게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 아닐까.


@gwundrig, unsplash





천문학자와 기상학자 사이


최근 갓 자취를 시작한 친구 a는 생일선물로 청소기를 주겠다는 애인 때문에 당혹해했다. d는 생활용품을 생일선물로 받고 싶진 않다며 울적해했다. a는 저렴해도 받았을 때 화사한 기분이 드는 꽃다발이 더 좋다고 했다. 한참 전 대학생 때 애인에게 다리미를 선물로 받은 기억이 오버랩됐다. 우리는 나란히 도리질을 했다. 실용품을 좋아하는 이에겐 실용품이 선물이 되겠지만, 감정에 집중한다면 쓸모없어도 다른 물건이 낫다. 하지만, a의 애인이 a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만큼은 역력했다. 다들 각자 방식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몇 달 전 서점에서 한 그림책을 발견했다. 센주 히로시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책이었다. 깊푸른 밤하늘이 책 전반에 따뜻하게 펼쳐져 있었다. 별을 쫓아 사슴 한 마리가 여행하는 내용이었다. 사슴은 오래전 내가 그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게다가 별을 쫓는 사슴이라니. 최근 그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 천문학자였다고 했다. 이건 그를 위한 선물이구나. 먹먹한 파란 밤이 찰랑이는 그림책을 두 팔에 안고 나왔다.

며칠 뒤, 그에게 활짝 웃으며 책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어릴 적 꿈이 천문학자라고 해서 생각났어. 그는 두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기상학자라고 했는데? 그에게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급히 자기변명을 했다. 왜 천문학자라고 기억했지? 기상학자보다 별이 더 스케일이 크고 낭만적이어서 그랬나 봐. 아무튼 사슴(별명)은 맞잖아. 얼굴이 어색한 웃음으로 붉어졌다. 아무튼 그는 선물을 받았다. 머릿속에 몇 겹의 필터가 있는 건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a의 애인이나 나나, 제위주로 생각하는 건 다를 게 없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선물.





제가 주고픈대로 사랑하지 말고


a의 애인은 1년 만난 a의 감성을 몰랐다. 그러나 그는 a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었다. 나는 애인을 연상시키는 두 가지 모티프에 환호하며 책을 골랐지만, 잘못된 기억으로 인한 착각이었다. 다들 제시선에 기대 상대를 있는 힘껏 사랑한다. 공을 패스하지만, 상대가  받아치도록 넘기지 않고, 그저 나의 열심을 보여주기에 바쁘다. 엇박자가 난다. 하지만 시몽은, 폴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관심이라는 결핍을.

잘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제멋대로 사랑해놓고 ‘이렇게 하면 기뻐하겠지’가 아니라, 상대가 사랑받길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사랑도 받는 이의 마음을 읽는 마케팅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곧 그의 생일이다. 이번엔 그의 사랑의 언어에 맞춰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랑할 줄 밖에 모른다. 오래전 연애 유형 테스트를 통해 그의 사랑의 유형이 ‘에로스형’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고 100번의 키스를 해줄 수도 없고, 곤란하다. 1달 내내 고민할 것 같다.





1)프랑소와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김남주 옮김, 민음사(2008), 56쪽
2)같은 책,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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