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궁금한 민지 Jun 01. 2021

To do list에는 없는 글쓰기와 사랑

언제든 해도 좋다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집 바나나는 항상 냉장고에 있었다. 내가 기억이라는 게 자리할 때쯤부터 바나나는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것이었다. 요리천재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두니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난 냉장고에서 바나나를 꺼냈고, 친구는 바나나가 왜 거기서 나오냐고 물었다. 과일은 다 냉장고 아니야? 바나나는 열대과일이잖아. 바나나는 오이보다 조금 무른 식감을 냈다. 바나나의 보관법이 잘못됐다는 걸 안 건 무려 이십 대 후반이었다.

주말에도 종종 일을 한다. 발등에 불 떨어진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한 주의 미션을 생각하며 프리뷰 비슷한 작업을 한다. 더불어 몇 달 전 시작한 외주 원고도 있으니,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전 사전조사도 한다. 밑작업을 해놓고 잠자리에 누우면 불안함이 가신다. 하지만 할 일을 털어낸 개운함 뒤에는 금세 씁쓸함이 밀려온다. 일요일 밤이라면 특히. 지난 일요일은 유독 떫고 씁쓰름한 맛이 강했다. 나의 글을 쓰지 못했다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해야 할 일이 없는 때는 없다. 쳐내야 할 일은 번호표를 뽑은 채 대기하고 있다. 한 고객을 보내고 나면 바로 다음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은행 창구처럼. 문득 생각한다. 매일 쳐내는 일, 나아가 ‘쳐내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메마를까.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에서 시간을 쓰고, 업무 시간에는 상당한 일들을 ‘쳐낸다’. 야근이라도 한 날은 말할 것도 없겠다. 퇴근길 빌라 화단에 심은 빨간 제라늄에 눈길을 주는 일은 택시로 대체되고, 사과 한 알을 나눠먹는 저녁 대화는 ‘잘 자’ 한 마디로 생략된다.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인생은 지금이니까.


-다비드 칼리 <인생은 지금(now or never)>, 정원정 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


쳐내는 삶은 보여줄 것이 남을지도 모른다. 설거지를 치우면 하얗고 매끄럽게 닦인 그릇들이 자리할 테니까. 커리어에서 깨끗한 접시는 실제 실행했다는 의미에서, 눈으로 보이는 결과로 남았다는 점에서 과거완료형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하고 있을 때만 빛을 발하는 일들이 있다. 글쓰기와 사랑이다. 도무지 돈이라곤 벌리지 않고 살점이라곤 되지 않는 글쓰기와 사랑은, 오로지 쓰거나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나 자신이 망가지지 않고 자정(自淨)하도록 만들어준다.


일은 글쓰기와 사랑과는 속성부터 다르다. ‘잘 쓴 메일’의 기본은 회신기한을 명시하는 것이다. 금일 17시까지 회신을 받아야 하는 업무 메일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삼각김밥과 같다. 반면 글쓰기와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이들은 완수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그저 공기와 같은 존재 조건인 것이다. ‘오늘 산소를 꽤 들이 마셨으니, 내일은 한숨 돌릴 수 있겠구나’ 따위의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오늘 사랑을 했다고 내일은 안 해도 그만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는 밥벌이의 노고를 알아서 저를 서운하게 하면 지금은 바쁘니까, 하고 선선히 물러난다.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냉장고 안쪽에서 조용히 맛을 잃어가는 바나나 얘기다. 글쓰기와 사랑은 유통기한 없이 관대하게 우릴 기다린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가장 소리 없이 숨을 잃는 존재이기도 하다.





며칠 전 a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눈앞에 주어진 업무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후회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상황에 충실한 인간이다. 기한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 한다. 그 외의 일들은 아웃포커싱으로 흐릿해진다. 문제는 인생에서 설거지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당장 할 일은 있고, 혹은 미리 해놔야 마음이 편하고 개운한 일도 산재해 있다. 거기에 글쓰기와 사랑이 설 자리는 없다.


글쓰기와 사랑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영영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사랑이지, 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둘을 하지 않는다고 나를 채근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속성으로 치고 빠질 수 있는 성격의 일도 아니다. 5월 31일, 사랑했음, 글썼음 따위로 정리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안부 묻는 정도야 구체화된 사랑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6월 1일엔 안 해도 된다는 뜻이 되진 않는다.


눈앞의 과제에 충실해 내일의 내게 부끄럽지 않은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해결해야  과제에 치여 글쓰기와 사랑을 언제까지나 유보해도 좋은 것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요일의 상실감으로 깨달았다. 글쓰기와 사랑은 내게 삶의 제반 작업과 같다는 것을. 다른 것들을 쌓아 올릴지언정   가지가 되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뻣뻣하게 얼은 몸으로 비스듬히  바라보던 바나나를 떠올린다. 성숙하게 익지도 못하고, 제때 썩지도 못한 바나나를.




언제나 순순히 자리를 내어준다고 해서, 언제든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일을 처리하고 다급히 찾아간 자리엔 펜과 연인은 온데간데없고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아 하물어져 가고 있는 폐가만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끼는 일에는 약간의 습관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사랑도. 애정이 깃든 습관이다. 글쓰기와 사랑은 <동행할 때만> 의미가 있다. 나의 글쓰기와 사랑이 언제나 상온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정말 중요한 일들에는 이유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