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_2018.01.06
리진_신경숙
의자를 밟고 올라가야 끝 칸에 손이 닿을 적에는 엄마 아빠가 읽던 책들이 암호 같았다. 어느 순간 보니 책장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날 것의 소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엄마여서. 여기까지 잘 왔다 싶다.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밤도 낮도 없이 하루가 노란 조명 아래 머무르는 내방이다. 그러던 내가 고양이에게 햇볕을 배웠다. 미나리 화분에 빛이 드는 건 오전 11시 전. 글씨 위로 해가 비스듬하게 달음질친다. 익숙한 순서의 음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이야기와 뒤섞인다. 거실의 시계로 온도를 확인하는 낮. 등이 뜨뜻한 시간에 책을 볼 수 있음이 새삼스럽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