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 사이 _어떻게 지내
어제저녁으로 만두를 구워 먹고 효리네 민박을 봤다. 효리가 윤아에게 여긴 다 잊어버려도 된다 했다. 손님들이 다 떠나고 부부는 다시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시골에 살면 제일 좋은 사람은 잠깐 놀러 왔다 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풀도 안 뽑아도 되고, 수도가 고장 나도 가스가 안 나와도 세상 큰일 난 것처럼 덜컥하지 않아도 된다. 저번 주에도 한바탕 이모들이 다녀갔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뭘 같이 먹을지 고민하고, 쓸 이불을 털어두고 했다. 월요일.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난 늘 똑같지, 대답한다. 자동응답기가 아니라 정말이다. 여기에선 뭔가 특별할 일이 드물다. 계절은 오고 또 가고, 더워지면 꽃이 핀다. 앵두나무가 거지주머니병에 걸린 일, 옹심이가 뱀을 물어온 사건과, 겨우내 버텨준 작약이 손바닥보다 크게 핀 것. 이게 최근의 빅뉴스이다.
밤엔 추워서 털옷을 입고 무밭 너머로 해가 지면 헐레벌떡 창문들을 닫는다. 정오가 지나면 햇볕이 뜨거워 마당일을 쉬어야 한다. 아직 끝난 봄도, 여름도 아니다. 벌써 여기에서 보내는 세 번째 5월이다. 곧 있으면 올해가 반으로 접힐 때다.
매일 지나는 다른 집의 대문 앞에 잔뜩 핀 불두화를 보며 침을 흘리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자기 팔보다 큰 전지가위로 좀작살나무 머리를 싹둑 잘라놓는 과감함을 보며 멋있어한다. 아직 남의 집 꽃이 더 탐스러워 보이는 초보지만 마당도 제법 갖춰졌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훈수를 두고 잔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심지어 우리 마당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친한 이모가 마당에 심으려고 20만 원어치의 싹을 샀다는 말에 엄마는 당장 강릉으로 가는 표를 끊었다. 지퍼 백에 씨앗을 한 꾸러미 들고. 누구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처지라니! 유행하는 나무들은 또 다 심어보고, 창의적인 실수를 꾸준히 하지만, 3년 차에 제법 프로 향기가 난다.
여덟 마리 고양이들의 성격을 구분하고, 어제와 다른 식물들의 얼굴을 찍으며 지낸다. 아직은 순간순간 이런 일상이 어색하다. 가끔씩 아니, 이래도 괜찮단 말이야?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튼다거나, 밤에 하모니카를 불고 뛰어다니며 춤을 춰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무리 괜찮다고 수십 번 말했지만 주인 없는 밭에서 상추를 뜯어간다던지, 덜컥 주는 호박 열개에 당황하지 않는 등. 이곳에 적응이 되어가는 중이다.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가득이지만. 찔레꽃과 아카시아 향기 그리고 뻐꾸기 소리에 이 봄과 여름 사이를 기꺼이 살아낸다.
역시 모든 건 예상과 걱정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