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Jan 15. 2019

열두 달의 취미, 열세 달의 습관

1살이 된 사진 찍기에 대하여


나에게 취미라고는 습관이 된 몇 가지뿐이다. 책 보고 음악 듣고... 가끔 쓰는 일기와 메모들 정도. 그러다 생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 지난 열두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찍었다. 이 브런치에 2017년 12월부터 매달 정리해 둔 귀촌일지 사진 편 12편, 홍콩, 단양의 사진이 글과 함께 있다.  



12월, 1월, 2월
홍콩
3월과 4월
5월
단양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나에게 카메라는 정말 늦은 물건이다. 10여 년간 사진관 집 딸이었고, 그걸로 작품을 한 적도 있으나 사진을 찍어볼 생각은 별로 안 했다. 몇 번 바뀐 아빠의 밥 카메라, 그리고 유행했던 DSLR, 중형 필름 카메라, 카메라 상자에 굴러다니던 필름과 니콘 필름 카메라 몇 개. 모든 걸 이사할 때마다 짊어지고 다녔음에도 그냥 버리지 못하는 무언가였다. 못 찍기도 했고, 찍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뭔가 쑥스러운 행위였다. 왜인지 자세히 설명은 못 하겠으나 그건 지금도 그렇다.





재작년에 윤미네 집이라는 책을 봤다. 윤미라는 딸의 모습을 아빠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 엮어낸 책인데 읽다 울었다. 눈물이 나는 책이 오랜만이었다. 찌르르해진 마음의 움직임이 생생하다. 그 책이 사진을 남겨야겠다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어릴 적 내가 필름 사진으로 촘촘하게 기록된 앨범이 책장의 밑 칸에 몇 권 있다. 고구마처럼 불타는 얼굴을 가진 아기 때 모습부터 엄마가 떠준 옷을 입고 놀이터에서 찍은 사진까지 빼곡하다. 윤미네 집도, 내 앨범도 교복을 입은 후부터는 사진이 거의 없다. 중학교 때 간 여행에서, 찍히기 싫어서 아빠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은 채로 박제된 사진도 있다. 이제라도 끊긴 앨범을 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지금의 시간. 시골로 내려와 아직은 모든 게 낯익지 않을 때를 잡아두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천천히 기억되는 그림보다 만드는 시간이 짧은 사진이지만 여러 공감각을 정확하게 묶어둔다. 그 당시에는 하나도 안 담긴다고, 사진보다 눈으로 보는 게 낫다고 하지만, 결국 한 방울의 향수처럼 맡는 순간 스몄던 기억이 피어난다. 여행이나 특별한 산책길에도 카메라를 꼭 챙기곤 하지만, 매일 보내는 것 속에 답이 있다고 믿기에 가장 찍지 않을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잘 내리 쐰 햇살이 거실에 드리우는 각도를, 피었다 시드는 백일홍을, 추워질수록 털이 찌는 고양이들을 찍었다. 어느새 네 계절이 흐르고, 처음 카메라를 자주 들었던 겨울이다. 1년의 얼굴은 다 돌아보았으니, 이제야 진짜를 찍을 순서가 왔다.





여태까지 찍은 사진은 캐논 30d로 찍은 카메라다. 중학교 때 아빠가 사진관에서 쓰려고 큰 맘먹고 산 카메라고, 수만 명의 얼굴을, 수십 곳의 풍경을 찍어냈다. 가족이 배부른 밥을 먹게 해 줬고,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배불리 한다. 오래되었어도 나 같은 초보가 쓰기에 과분하다. 물려있던 줌렌즈를 빼고 단렌즈를 끼워 쓴다. 맑게 나와서 좋고, 무엇보다 가까이 찍으려면 눈으로 볼 때처럼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든다. 85mm라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신기한 스쿨버스를 탄 듯 확대가 되어, 작은 곤충의 시야 같다. 거대한 풍경이나 큰 물체가 없는 이곳 풍경과 잘 어울린다. 너른 곳보단 복작복작 작은 게 많다. 마당도, 집도, 일터도 그렇다. 오랜 시간 두고 봐야 보이는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을 잡아내기에 적절하다.  


5월쯤, 봄이 되면 필름 카메라에 도전해보자고 적었던 새해 다짐을 지키기 위해 굴러다니던 필름과 카메라 가방 안에 누워있던 니콘 카메라를 꺼냈다. f-801s 모델이고, 엄청 무거운 줌렌즈가 물려있었으나 다른 니콘 렌즈가 없어서 마당에서나 근처 산책을 다닐 때만 몇 번 써봤다. 반은 날아가고 몇 장을 건진 필름 스캔본을 받고, 이렇게 찍으면 되겠다 알 때쯤, 배터리 부분의 플라스틱이 삭아서 날아갔다. 날아간 조각을 잃어버려서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필름 카메라를 뒤지겠다는 생각으로 몇 날 며칠을 무슨 카메라를 살지 찾아봤다. 뻘건 눈이 무색하게, 그냥 예쁘게 생긴 걸 샀다. 무거운 밥 카메라를 보완할 수 있게 무엇보다 가벼워야 했고, 엇나간 초점으로 대부분 필름을 날린 탓에 오토를 사고 싶었다. 그렇게 라이카 미니 줌이 내 손에 들어왔다. 중고로 배달받을 때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쫄보에게 중고 나라는 해롭다. 함께한 지 석 달째, 휴대성이 좋아서 몇 안 되는 외출의 순간에, 무거워서 못 본 척하지 않고, 데리고 나간다. 깊고 진득한 맛은 없지만 이름처럼 미니한 덕분에 자주 손이 간다. 그래서 밥 카메라에 소홀했다. 미안하다. 그래도 수산시장이나 연꽃이 핀 기찻길, 산수유 밭 같은 특별한 외출에는 무거운 카메라를 꼭 데리고 간다. 배터리도 뚱뚱하고, 동영상도 안되고, 커다란 메모리카드가 들어가지만, 앞으로도 고장 나기 전까진 계속 함께할 셈이다. 1년간 여기저길 누비며 정이 들었나 보다. 무겁다고 투덜대지 말고 잘 짊어지고 다녀야지.




이제는 망가진 니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청경채 꽃
작약
위쪽 사진과 같은 꽃을 캐논 dslr로 찍은 것
쑥갓 꽃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마당으로 쫓겨났다.
붓꽃과 야생 패랭이
소주잔
이상하지만 잘 나온 낮달맞이 꽃
울타리를 뚫고 나온 도라지
앵두나무
귀여운 겨자
사과꽃


한 롤은 이렇게 날려먹었다 ㅠㅠ



중국 드라마를 한창 볼 때는 세상 말이 중국어로 들리는 것처럼, 카메라도 몇 번 들여다봤다고, 시선에 네모 칸이 드리운다. 아 여기 찍으면 좋은데. 이렇게 딱 각이다. 매일 걷는 곳이니까 카메라 가지고 나왔을 때 찍어야지. 그대로 있겠지? 계절은 흐르고, 그 프레임은 기억 속에서도 사라진다.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되는대로 자주 쓰길 바란다. 완벽하고 싶어 시작을 두려워 말길. 열두 달의 취미 생활은 끝이 났다. 이제는 사진이 습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미공개 필름 사진들, 날짜가 있는 건 라이카 미니로 찍은 것, 날짜가 없는 건 일회용 카메라

귀촌일지 사진편_12월  

https://brunch.co.kr/@chocowasun/29


귀촌일지 사진편_1월  

https://brunch.co.kr/@chocowasun/37


귀촌일지 사진편_2월  

https://brunch.co.kr/@chocowasun/42


귀촌일지 사진편_3월  

https://brunch.co.kr/@chocowasun/43


홍콩 여행기 

 https://brunch.co.kr/@chocowasun/44


귀촌일지 사진편_4월  

https://brunch.co.kr/@chocowasun/45


귀촌일지 사진편_5월  

https://brunch.co.kr/@chocowasun/54


여름의 단양 

https://brunch.co.kr/@chocowasun/55


귀촌일지 사진편_6월  

https://brunch.co.kr/@chocowasun/56


귀촌일지 사진편_7월  

https://brunch.co.kr/@chocowasun/58


귀촌일지 사진편_8월  

https://brunch.co.kr/@chocowasun/59


귀촌일지 사진편_9월

https://brunch.co.kr/@chocowasun/60


귀촌일지 사진편_10월  

https://brunch.co.kr/@chocowasun/62


귀촌일지 사진편_11월  

https://brunch.co.kr/@chocowasun/63


이전 11화 귀촌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