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Feb 21. 2019

귀촌일지

사진편_겨울 이야기_필름

새로운 카메라라고 하기엔 벌써 네 달 째 함께하고 있지만, 어쨌든 새 카메라인 라이카 미니로 찍었다.

굴러온 돌에 밥 카메라가 찬밥신세다. 가벼운 게 장땡이네! 어딜 가든 지니고 다니며 엄청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12월부터 고인 게 다섯 롤뿐이다. 맡겨서 찾는 시간 차 덕분에 이제야 겨울의 일지를 쓴다. 슬슬 미세먼지 조심하라고 재난문자가 온다. 정신 차리게 불던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녹진하게 풀어진다. 다가오는 봄이 재난같이 넘실댄다. 단단한 겨울 풍경들 앞에서 이유 없는 울적함을 접어본다.  



누가 줘서 받은 맥주. 우리 집에서는 쓰레기 많이 생긴다고 양이 적다며 천대받았다. 한 끼에 다 먹기 전 마지막 모습. 뒤쪽엔 꽂아놓은 민트. 




식탁은 엄마의 작업대. 그리고 엄마가 무인도에 들고 갈 때 꼭 챙긴다고 한 휴지.




휴지가 널려있던 카페. 




친구네 회사에 있던 도자기 펭귄. 




임시 개장한 서울식물원. 겉옷을 팔에 걸고 큰 온실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웅 낮게 퍼지고, 습한 냄새와 온기가 행복했다. 우주선 같은 거대 온실은 아마도 피어나는 꽃에서 형태를 따온 듯하다. 식물의 표피 같이 늘어진 천장 구조. 잠자리의 날개도 닮았다. 열기구부터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들, 곳곳에 꾸며진 설명 카트같이 볼 게 많았다. 정식 개장을 하면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굿즈 파는 곳에서 역시나 눈이 돌아가서 달력을 샀다. 씨앗을 대출받고 다시 갚는 시스템의 씨앗 은행을 준비 중이었다. 기대되고, 꼭 사용해 볼 거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닮은 나무. 




할머니 할아버지 넷이 친구 같았다. 놀러 오신 듯. 친구 아닌 데 나란히 앉아계실 수도?




눈이 펑펑 오던 날. 어른 되면 눈 오는 거 싫다고 했는데, 아직 좋다. 다행이다 아직 안 어른이라. 작년엔 아휴 아직도! 오늘도 또! 오냐 싶었는데, 올 겨울은 눈이 귀해서 웃으며 봤다. 포슬포슬하게 짧게 깎인 벼 위로 내리는 눈송이들. 아무도 밟지 않은 곳. 




지나가다 들린 미술관에서 만난 데미안 허스트. 갑분데! 갑자기? 여기서?? 백화점 앞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있다. 데미안 허스트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음... 어릴 때 보지 말라고 혼나던 동화 같아서 뭔가 몰래 보게 된다. 해골의 눈알은 바람으로 흩날리고 있었다는 점! 꺅. 찐일까, 복제품일까, 이걸 얼마에 사 왔을까만 생각하게 되는 불량한 관람객. 



 

법칙같이 이런 풍경에는 꼭 눈이 순한 개들이 있다. 개가 묶인 줄이 길어서 마음 아파하지 않고 인사했다. 



 

친구 놀러 온 날. 대청댐. 어릴 때 와봤나? 싶었는데 걸어보니 몇 년 전에 왔었다. 소름. 구인사 템플스테이도 야외 스케치 때 구인사 앞에 한참 앉아서 그림까지 그렸던 걸 잊고 다시 간 붕어 기억력. 용량이 적어서 장소까진 저장이 안 되고, 그때의 감정만 남는다.




목요 풍경. 실내에서는 탑 뷰로 보인다. 긴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이 갈대밭이 평화의 상징. 








당분간 생각 안 날 만큼 징하게 먹은 과메기. 맛있는 과메기를 수소문해서 몇 보따리를 시켜먹어 보는 실험까지. 껍질은 고양이주고, 크게 썰어서 밥이랑 먹는 게 최고다. 김은 곱창김, 마늘은 장아찌로. 얼음이랑 탄산수 먹은  매실 술이랑 먹다가 몇 번 아홉 시에 잤다. 시골의 겨울밤은 길어서, 먹고 먹어서 보내야 한다. 



 

도시 나들이.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이제 큰 쇼핑몰만 가면 홍콩 같다. 소비 소비 또 소비. 




엄마의 작업대 2. 밭일을 못하니까 종이 감기로 정원을 만들어버렸다. 




매일 보는 거실 풍경. 어느새 한 두 마리씩 바뀐다. 




내가 만든 잡지와, 그림 그리러 온 애기가 쓴 바퀴벌레 똥이 나란히 있다.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적어서 제대로 영역 표시했다. 한 번 읽으면 자기 전까지 생각나는 중독성과 화려함이 매력이다. 엄마가 만든 드림캐쳐, 터키 다녀온 애기가 사 온 행운의 눈알, 보홀에서 사 온 조개도 걸려있다. 조개 만든 거냐고 오억 번 질문받았는데, 샀어용. 내가 꿰맨 듯 한 옷만 입어도 만들었어요? 물어본다. 샀어요 엉엉.    




저녁이 되면 해가 드는 나의 일터.



 

겨울의 밭. 황량하쥬. 거름이 되라고 각종 껍질들은 다 여기에 버린다. 




하우스 안에 널어 둔 시래기. 겨울에도 야채를 먹으려고 야심 차게 하우스를 지었는데, 너무 크고 못생겼다. 막 설계해서 프로젝트라고 열심히 만든 아빠가 상처 받을까 봐 없애자고 말은 못 했다.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상추는 달달하고 아삭해서 고기가 밀린다. 상추를 사 먹다니.. 죄책감이 들다가도 억세고 맛없는 우리 상추에게 조용히 비닐을 덮어준다. 봄에는 꽃이나 열심히 심는 걸로.  




마른 가지들이 키만큼 쌓여서 쌍가마솥 불 때기. 한참 불놀이하고 들어온 엄마 아빠한테서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 훈제된 엄마 아빠(?). 



 

식물 귀한 겨울에는 미나리가 훌륭한 화초가 된다. 




버리는 차로 향기 주머니 만들기.




가운으로 만든 베개. 



 

좋아하는 길. 



 

국립 청주 현대미술관이 생겼다. 서울에서 이사 온 낯익은 작품들이 몇 개 있었다. 수장고형 미술관이라 큰 창고라고 보면 된다. 애기들한테 물어봤더니 많이 픽하길 일층의 사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새 친구 감귤 라이언!




서울미술관. 신관에서 서세옥과 김환기의 작품을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마당에서 밥을 주는 길 고양이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너네는 이 마음을 아니????? 이 고생을 아니????? 전혀 모르고 밥이나 내놓으라는 표정들. 



 


밀린 사진들은 또 언제쯤 받아보려나. 작년처럼 매 달 정리하진 못하겠지만, 묶음으로 보니 또 좋다. 다음에는 봄 이야기로 커밍쑨. 

이전 12화 열두 달의 취미, 열세 달의 습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