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들 seondeul May 04. 2020

떠남의 사이

4권의 책과 1곡의 노래, 1개의 경기


‘떠남’의 이쪽부터 저쪽 사이에 있는 4권의 책과, 1곡의 노래, 1개의 경기를 모았다.      


떠남-회피 /김동영, 김병수_당신이라는 안정제

떠남-숨 / 릴러말즈_trip

떠남-야생 / 에마 미첼_야생의 위로

떠남-흉터/ 허수경_가기 전에 쓰는 글들

떠남-신념/ 알베르트 슈바이처_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떠남-마지막/ 김연아_ 아디오스 노니노





떠남-회피


김동영, 김병수_당신이라는 안정제


여행 작가와 정신과 의사가 주고받은 글을 묶어낸 책이다. 표지의 질감과 디자인을 아주 좋아한다. 평화로운 마음을 지향하고, 잔잔한 인생을 사는 나에게 낯선 이야기였다. 읽다 보면 숨이 막혀서 단숨에 읽기 버겁다. 우울증은 원인이 없고, 누구나에게 드리워질 수 있음이, 이제야 사회적으로 많이 통용된다.      


공황이 와도 낯선 곳에 머무르는 마음은 회피에 가깝다. 외면하는 현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덜 괴로울 거라 믿고 행하는 선택. 이성으론 부작용을 알지만 반복하는 일이다. 떠나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움푹 패서 답가와 함께 묶어냈다. 대척점에 이병률의 끌림이 있다. 떠남의 좋은 질감만 잘 골라낸 아름다운 책. (이병률의 최근 작 ‘혼자가 혼자에게’가 와 닿지 않는 게 다각도로 씁쓸하다)      


답하는 정신과 의사의 태도는 일관됐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줘야 할지, 의사조차도 모르지만 자신의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것. 잡고 거둬지는 끈은 못되어도, 강의 건너편에서 보내는 노랫소리같이 느껴진다.      

이후에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봤으나, 이 정도 절절한 고백은 어려울 테다. 그리고 그 편이 스스로에게도 좋다.      






떠남-숨


릴러말즈_trip


https://youtu.be/5C-UzW1FLiA


배낭 메고 여행이나 갈까

머리도 식힐 겸 지금 말야    


다 두고 가버리는 상쾌함이 이 곡에 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이제는 힙합을 한다. 납치되어 와서 일종의 살풀이를 하듯 노래를 끊임없이 내더니 이제야 좀 소강상태다.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눈 깜빡한 사이에 돌아올게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잠깐이면 돼 잠깐     


확 떠나지 못하는 잠깐의 미련도 있다. 숨 좀 쉬려고 떠날 건 데, 잠깐만 다녀온단다. 찢어지는 목소리가 나름 절절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요즘, 여행을 위한 여행 대신 이 노랠 들으시길. 숨이 펑 쉬어지게 시원하다가도, 집에 있는 현실을 잊지 않게 해 준다.      


ps. yolin 이란 단어가 이 노래에 너무 잘 어울린다. 느긋하게 듣다가도 그 단어 나오는 부분 들으려고 귀 기울이게 된다.






떠남-야생


에마 미첼_야생의 위로      


우울증을 고백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 스스로와 싸웠던 일 년의 기록으로,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거리들을 제친 나머지 시간을 거칠게 부숴 담았다. 아름다운 사진 또한 몰입을 높인다. 죽을 것 같던 때 꾸역꾸역 살게 해 준 건 산책과 강아지다. 안개 같은 절망 속에서 풀과 새를 보고 안정을 점차 찾아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에서 소피가 점점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듯 천천히.


불안함은 영혼에 눌어붙어 번졌다 지워졌다 반복한다. 해결하는 방법을 실험해 나가야 한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나온 다큐멘터리 숨을 보다 한낮에 눈물을 글썽였다. 태어나기를 선택한 존재는 없으며 그저 살아가는 것이란 이야기에 위로받았다. 식물도 사람도. 주문한 적 없는 삶을 지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오랜 시간 정신과 몸을 섬세히 고치며 살아야 한다. 그저 살아내는 야생의 생명력은 단단한 버팀목이 된다.      






떠남-흉터


허수경_가기 전에 쓰는 글들    


고고학자로서, 시인으로서, 타국에서 머물다 간 사람의 마지막 책이다. 절절해서 마찬가지로, 한 번에 읽기 힘들었다. 감정의 고름에서야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슬프다. 혹시라도 스스로가 흐려지는 순간, 밋밋한 삶에 직접 흉터를 내서 그 골에 들어가지 않을까. 영화 ‘위플래쉬’를 보며 충격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덜 쓰고 덜 느껴도 되니 덜 아팠으면 좋겠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갈 것을, 허망하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내길 매 순간 바라는 아이러니. 남겨진 글자를 읽을 뿐이다.           






떠남-신념


알베르트 슈바이처_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모자를 쓰고 조끼를 입은 그림이 그려진 위인전 표지. 어렴풋한 기억을 헤쳐보고자 읽게 되었다. 슈바이처는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릴 서른 무렵, 의학 공부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원시림으로 향했다. 더운 나라에서 지낸 일상과 현지 사람들을 고치며 생긴 일들을 다분히 객관적으로 기록했다. 일기라기보다 생생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물비린내가 나고, 땡볕 아래 곪은 상처들은 만발하며, 맨발의 진흙이 밟히는 것만 같다.


후원금을 원하는 편지를 절절하게 쓰던 ‘그’ 베토벤처럼, 슈바이처 역시 전쟁 중에 끊기는 후원금을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간신히 약을 사 배로 들여와 병을 고치면, 원주민들은 그를 주술사로 여긴다.


보장된 삶을 두고, 물과 원시림 사이로 떠난 슈바이처. 무려 1913년의 이야기고, 그 시대의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더 아득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이 사람을 떠나게 했으며, 버티게 했고 결국 거기서 생을 마감하게 했는지. 이 책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이 바로 신념이다. 한낱 나는 속죄로서의 선행을 감히 이해할 수 없을 테다. 구원은 무엇일까. 누가 누굴 구원하지. 사실 스스로를 구원하러 떠났나. 묻지 못할 질문으로, 우주 앞의 개미처럼 느껴진다.      






떠남-마지막


김연아_ 아디오스 노니노                


https://youtu.be/peX_eX06DN8


안녕 아버지. 빙판을 떠나는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이다. 사랑했던 걸 마지막으로 보내는 연기. 그림도 피아노도 강한 건 쉽지만, 섬세한 전달이 더 어렵다. 아디오스 노니노에서는 깊은 애절함이 전해졌다. 김연아는 실수 없이 마쳤고, 은메달을 땄다. 발표 후에 웃었고, 방상아의 ‘고마워’라는 말에 눈물이 터졌는데, 카메라 뒤에서 울 수 밖에 없었다. 진심이 왜곡될까봐. 


김연아의 성장과 마무리를 함께 겪어온 세대로서 그 태도는 어떤 가치를 전해줬다고 생각한다. 담대함과 열정, 의연함, 인내. 가장 좋아하는 건 레미제라블이지만 힘들 땐 이 경기를 찾아보게 되는 건 다 태우고 떠나는 자의 눈부신 모습 때문이다.           





    


갉고 뜯지 않아도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란다.

그리하여 베스트셀러 작가, 메달리스트, 유명한 가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은 개인이 되길 바란다. 그러고도 기운이 남는다면. 다 떠나왔기에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