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고사 잘 치르길

사랑한다

by 초들

예비고사 잘 치르길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라는 찬송가 곡조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양림동, 이제 나는 양림동 사람이 되었다. 10월 6일이었지. 너와 서운한 헤어짐이 있는지 오늘이 9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건강하고 학업에 전념하는지, 또 부모님 이하 식구들은 모두 평안하신 지? 궁금하구나. 아마 모두들 하나님 보살핌 속에서 무탈하게 지내시길 기원해 본다.


10월 10일은 나의 22돌 맞이 생일이었다. 풋, 혼자서 짐짓 모른 척 지내버린 조촐한 생일, 결국은 쓸쓸한 우수(憂愁)만 가슴에 안았다.


承弟야!

네 생일은 언제야? 엄청 축하해 주고 싶어. 꼭 생일 선물도 주고 싶어. 여의찮으면 최소한 마음의 선물이라도 보내게. 나처럼 쓸쓸한 생일을 보내면 절대로 안되거든.


문득, 텅 빈 혼자만의 밀폐된 세계 속에서 잔뜩 말라버린 감정으로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이런 나라면 너도 싫겠지. 사실 나도 싫거든. ‘크고 작은 고통 깡그리 잊어버리고 환희(歡喜)의 헹가래 속에서 다정다감한 얘기꽃 피우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계절 탓인지 노곤해지는 오후 시간이 권태롭기만 하다.


10월 6일은 정말 미안했어.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실은 지난 4월, 교사 발령통지서를 받고 너랑 같이 목포에 갔을 때, 짜증스러워했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었다. 또, 이제 곧 예비고사를 볼 너를 생각해 보니 몹시 초조해지고 바쁜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너를 데려가지 않는 거야.


그때, 이런 생각도 했단다. ‘어머니께서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봐야지’라고. 현재 너의 재수(再修)의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솔직히 난 두렵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거든. 확신하고, 믿고 싶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어. 못 믿는 게 아니라, 결과를 확인할 때 훨씬 안심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를 생각했으니, 나는 얼마나 초조했겠니? 시험 결과에 우리의 만남을 올려놓고 저울질해야 하는 내가 너무 비굴했다. 아니지 너무 미웠다.


承弟야!

현재의 나의 사랑 관(觀)은 너에게 끊임없는 기대욕구(期待欲求) 추구로 표출되는 것 같아. 이 욕구는 현실의 지배 속에서 잉태된 산물(産物) 임을 잊지 마라. 현실의 타개책으로 사랑을 희생하는 셈이거든. 좀 깊은 얘기지. 다음 기회에 세세한 얘길 나누기로 하자.

아무쪼록 건강과 행운이 주안에서 함께하기를 기원할게.

1979.10.15.(월) 8:20 am. 浩兄


추신: 예비고사 잘 치르길. 이제 예비고사 22일 남았다. 열심히 공부하는 네가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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