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까? 사랑! 그래 이게 밑거름이다

너는 내게 한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by 초들

뭘까? 사랑! 그래 이게 밑거름이다



눈이 왔다. 밤사이 바람만 요란스럽게 부는 줄 알았더니 소리 없이 실눈이 대지 위를 살짝 덮었다. 펌프질을 했다. 땅속 깊은 곳의 따뜻한 물을 끌어올리려 펌프질을 빨리 했다. 웬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세수할 만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잽싸게 세수하고 방에 들어왔다.


싸늘한 교무실(敎務室)!

교장 교감, 또 두 분 선생님, 김주사님(廳夫), 강사 선생님 그리고 나. 일곱 사람의 하루 업무가 소리 없이 깨어질 듯, 아슴아슴 시작된다. 근간에 유난히 싸늘한 이 야트막한 실내(室內), 그 속에서 젊다고 열심을 부린다는 게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실루엣(silhouette)으로 치장(治粧)되고 만다.


광주(光州)라는 곳!

도시(都市), 거대한 인간의 행렬, 물 밀듯 번지는 메커니즘(mechanism)과 인간소외(人間疎外)를 생각하면서 공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대비시켜 본다. 적어도 여기 암천리(巖川里)는 바위, 시냇물,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이다. 공간(空間)을 아름답게 수놓은 것은 바로 우리 인간(人間)이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숭고하고, 진실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


承弟야!

밤새 조금 쌓인 잔설(殘雪)이 따스한 햇볕에 다 녹아버리고, 맵고 지겨운 바람만 나뭇가지를 흔들며 달려든다. 옹기종기 햇볕 와닿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쳐다보며, 내가 이들을 가르치고 있음에 스스로 대견스러워해 본다. 붉게 물들어 거의 다 사그라져 버린 나뭇잎을 쳐다보니, 벌써 앙상한 겨울의 소박함을 기다린다. 인간의 황량한 마음을 포근히 감싸줄 적설(積雪)의 신비를 벌써 기다리는 거지. 나는 이 모든 걸 온통 사랑하고 싶다. 끔찍하게 말이다.


열심히 살자. 두껍고 냉혹한 현실을 부단한 인내(忍耐)로 극복해 나가자. 너도 그럴 수 있겠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 내게 드리워진 현실에도 너는 그토록 의연하고 근엄할 수 있다니. 뭘까? 사랑! 그래 이게 밑거름이다. 사랑이 없다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너는 내게 한없이 고마운 사람이다.

또 만날 때까지 너의 건강을 주님께 기도할게.


1979.11.13.(화) 11:30 am. 浩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