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사랑! 운운(云云)했고

너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거든

by 초들

그토록 사랑! 운운(云云)했고



밤 10시가 훨씬 더 지난 시각에 이 글을 쓴다.

오늘은 몹시 어수선한 하루였다. 갑자기 같이 가겠다고 해서 목포 가는 차비를 메꿔야 했고, 그만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서둘러 세면(洗面)만 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택시를 탔다. ‘벌써 네가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봐’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기사님을 재촉했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고 초조(焦燥)한 것임을 잘 알기에, 역광장을 이리저리 샅샅이 두리번거렸다. 끝내 네가 나오지 않음을 알고, 몹시 서운해서 자꾸 뒤돌아보며 개찰구로 들어갔다. 혼자! ‘그래. 인간은 철저히 혼자이지.' 순간, 혼자라는 사실이 숨 막히게 외로웠다. 발코니에 살짝 나타난 여인을 쳐다보며, 행복한 여정(旅情)의 설렘 달랬던 헤세(Hermann Karl Hesse) 부러워하며 말이야.


나는 열차의 기적소리에 움찔 놀라며, 뒤로 달려가는 풍경에 그만 시선을 떨궜다.


동생은커녕, 아무런 연락도 해주지 않는 부모님께 애꿎은 짜증 내며, 광주행 버스를 타려고 공용정류장으로 향했다. 표를 끊었더니, 버스 좌석도 45번 끝자리, 기분 나빴다. '같은 돈 주고 45번이 뭐야.' 하지만 늦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그냥 앉기로 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왼쪽 옆좌석 한 쌍의 청춘은 끔찍이 사랑을 속닥거렸고, 또 오른쪽 옆자리 두 청년은 벌써 코 곯았다. 전(前) 같으면 슬며시 미소 지었을 텐데, 오늘은 내내 도톰한 입술 꼭 다물고 도대체 말없이 얌전해야만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행여 네가 자취방에 왔을까?’ 생각하고 방문을 여니, 텅 빈 방 안에는 싸늘한 냉기만 가득 외로움 가져다준다.

엊저녁에는 그토록 사랑! 운운(云云)했고, 또 내일 오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채 낫지도 않는 무거운 몸을 택시에 싣고 역까지 갔는데... 하지만 원망(怨望) 하지 않기로 했다. 원망은 자해 행위. 너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거든, 그래서 꾹 참았다.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이까짓 외로움이야, ‘누워서 떡 먹기’이지. 견뎌내야 해.’ 혼잣말하며 내일 새벽차로 암천리(巖川里) 갈 생각에 서둘러 잠을 청했다. 오늘 나는 불쌍한 사내아이였다.

1979.12.26.(수) 밤 11:30 양림동에서 浩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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