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이렇게 괴로운 걸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다

by 초들

사랑이 이렇게 괴로운 걸까?



탄탄히 쌓은 아름드리 성(城)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듯하다.

내가 “청바지 입은 네 모습, 안 좋아 보여”라고 했지. 이렇게 말해서 샐쭉한 표정 지으며 버스에서 내렸을까? 지금 나의 마음은 뒤집어졌다. 매사 하나하나에 꽁냥꽁냥 정성을 담고 있는데, 承弟는 도무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일에도 토라지고 마네. 아니다. 너의 자존심이 몹시 상했을 것 같다. 잠시의 실언(失言)에 넓은 아량을 구할게. ‘허허, 정말이지 나는 영원한 고독의 방랑자, 크놀프 인생인가? 그 누구에게도 정겨운 사랑을 못 받는 가련한 존재일까?’하고 심통을 부려본다. 나는 네가 밉지 않다. 항상 모든 느낌이 사실이 아니기를 새가슴 되어 바랄 뿐이다.


애타게 기다리고 고대했던 예비고사(豫備考査) 결과 발표!


지난 28일, 예비고사 발표일! 내가 시험을 치른 듯이 가슴 졸였다.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하지만 너는 보란 듯이 고득점을 받았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내가 더 기분 좋다. 그런데 어제 너는 회의(懷疑)를 품게 했다. 나는 버스비까지 꼼꼼히 계산해 가며 용돈을 쓰지만, 너와의 시간 속에서는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어떻게든 네 기분 맞추려고 돈을 썼다. 때문에 가난한 浩야는 항상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이런 나에게 격려, 위로의 말은 고사하고 작은 일에 뽀로통하며, 말도 없이 버스에서 내리는 너를 보고 한없이 공허했다.


밤의 외로움을 가득 안고 사는 이 浩兄이를 너는 모른다. 비 온 뒤 암천리 흙탕길, 손을 호호 불며 자전거를 타고 면 소재지로 달려간다. 너를 만나고 싶어 새벽 버스 타려고 달려간 거지. 너를 향한 애정 가득한 나의 마음을 부디 알아주길 바란다. 자질구레한 오해, 저만큼 던져버리고 말이야.



'너는 너, 나는 나. 엄연히 한계 지어진 우리 사이일까? 아닐 거야.' 버스에서 말없이 내리는 너를 붙잡고 내가 사과해야 하는 건데. 그냥 괴롭구나. '사랑이 이렇게 괴로운 걸까? 이러다 기미년 마지막 주일(主日)을 범하고 마는 걸까? 이 죄 많은 인생, 어디 숨을 데가 없는데.'



택시를 타고 교회에 갔다. 치졸하게 남자가 계산하는 게 우습지만, 버스비는 80원이고 택시비는 800원이야. 버스를 10번이나 더 탈 수 있는 액수라서 너무 아깝다. 여하튼 교회 갔지만, 내 마음은 싸늘하다. 예수님을 온전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찬양마저 엉망으로 해버린 주일이 되고 말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출 수 없어 얼른 양림동에 왔다. ‘행여나 내 사랑하는 님이 왔으려나’ 상상을 하면서. 하지만 역설적인 상상이 나을 뻔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을 보니, 허전한 내 마음 더 초라해졌다. ‘생일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하고 생각해 보지만, ‘기꺼이 환영할 承弟일까?’하고 망설여본다. ‘왜 나와 너 사이에 이런 군더더기 벽이 생기는 걸까? 쓸데없는 상념(想念)이 아닐까?’ 내심으로 자꾸 자위(自慰)해본다.


‘承弟는 지금 무엇을 할까?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용서를 빌고 싶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나는 모든 감정이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따르련다. 너와의 사랑도 주 안에서의 사랑으로 굳게 결속되길 바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너와의 사랑을 숭고하고 희생적인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승화(昇華시키고 싶다.


承弟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러기에 작은 일 가지고 화내거나, 벽을 만들고 싶지 않다. 괴로우나, 슬프나, 어떠할지라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있는 承弟에게 오직 다정다감한 사랑으로 덧입혀주고 싶다. 작은 허물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가 承弟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증거가 된다. 나의 실언으로 너를 이러쿵저러쿵 달리 생각하는 것은, 내 감정이 너무 얇다는 것이다. 좀 더 넓고 굵게 살자. 작은 허상(虛像)에 얽매이지 말고, 저 푸른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자. 놀라운 주님의 세계를 찬양하며 살자.


承弟야!

어제의 浩兄이의 불찰(不察)을 용서해라. 진심으로 사과한다. 너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내가 본의 아니게 실언했다. 넓은 관용으로 이해해 주길 바라며, 우리 좀 더 주님께 죄스럽지 않게 살아가자.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집중하면서, 의지하면서 힘겨운 이 세상, 진정한 사랑의 힘으로 헤쳐나가자.

기미년이 다 간다.

좀 더 주님의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네게 실언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1979.12.30. 4:20 pm. 浩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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