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다려야지. 만남의 기쁨이 아주 클 테니까.
울퉁불퉁한 도로를 평평하게 정리한답시고 불도저로 밀어 버렸단다. 이를 어째? 황토 흙과 진흙이 신발 밑에 찰싹 달라붙고, 자전거 타이어를 감아 버려 도무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구나. 뒤돌아갈 수도 없고, 온통 산 중이라 다른 길도 없고 이거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도 답답해서 왕짜증 나고 울음이 나오려고 한다. 귓가에 스쳐 가는 바람 소리, 차라리 차디찬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땅을 얼려서 자전거 타기라도 좋았으면’하고 말이야. 악을 고래고래 지르며 2시간가량 악전고투(惡戰苦鬪) 한 결과, 암천리에 도착했다.
늘 그렇지만 깊은 산 속, 암천리에는 텅 빈 적막감과 숨 막히는 공허함이 나를 맞이한다. 이곳에 네가 있다면 자연스러운 고독(孤獨)이 무엇인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거야. 도시에선 군중(群衆) 속의 고독이겠지만, 인간 본연의 참 고독은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아. 자연(自然)에서 우리는 진정한 고독을 느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처럼 크게 쓴 이유는 내가 위대한 명언(名言)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친근한 말인가? “어때, 이 兄은 역시 다르지 않니? 비범하지 않니?” 후후후. 산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잠시 물리치고 싶어 원맨쇼를 한다.
承弟야!
‘Amazing Grace’를 듣고 있다. 주님을 찬양하는 성가(聖歌)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유치북교 숙직실, 머리맡에 야자 과자를 놓고서 이 글을 쓰는 나는 무척 행복하다. 틀림없이 광주에서 이 浩兄이를 향한 연모(戀慕)의 정을 키우고 있을 너에게 지지 않으려고, 암천리 浩兄이는 너를 향한 애정을 콸콸 쏟고 있단다. 아이고, 어떻게 13일까지 기다리지? 그래도 기다려야지. 만남의 기쁨이 아주 클 테니까.
교회 꼭 가고 내 몫까지 겸손을 빌어 주길.
ADIEU. 사요나라. Goodbye.
1980.01.02.(수) 浩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