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록 더더욱 보고 싶으니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그동안 안녕.
하루하루 몹시 빨리 가기를 바라며 浩야는 오매불망(寤寐不忘) 빨리 토요일이 오길 바라고 있다. 네 사진을 꺼내 보고, 또 꺼내 보고... 벌써 여러 번이다.
보고 싶은 承弟야!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보고 싶게 만드는 거야. 맹꽁이 같은 녀석!
나는 너를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척하려는 데, 그럴수록 더더욱 보고 싶으니 이를 어째.
承弟야!
요즈음 하루하루 나는 불투명한 의식 속에 갇혀 산다. 뚜렷이 삶을 관조하지 못하고 무심코 흘려보낸다. 비 온 후, 시냇물 끝없이 흘러내리듯, 덧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할까?
지난 주일(主日)에는 나는 말문이 막혀 기도하지 못했어. 예수님을 생각해 보니, 갑자기 나 자신 두려움과 죄책감이 많이 드는 거야. 순간적으로 차라리 예수님을 몰랐던 때가 별로 구속(拘束)을 당하지 않았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예수님께 구속당하는 것이 나를 변화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지. 모진 세파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일 거야.
예수님은 많은 시험과 고통을 한 몸에 받으셨지. 그러기에 영광스러운 생명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을 거야. 나도 예수님처럼 갖은 수고와 고통, 구속을 올곧게 겪어야 단단한 인간이 되겠지.
承弟야!
왜 하필이면 네가 나의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까? 까막까치가 칠월 칠석날, 견우 도련님과 직녀 아씨가 상봉할 수 있도록 오작교 다리를 놔주듯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끄나풀이 있을 것 같아. 물론 주님이 잘 알고 계시겠지.
그 많은 여자 가운데 유독 너만을 끔찍이 생각하고 있어. 내가 대견해 보인다.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만남을 가질 거야. 그 많은 만남 속에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은 과연 어떤 빛깔을 띄고 있을까? 아마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은 아니겠고, 언제나 고고한 푸른 상록수 빛깔일 거야. 비 온 후, 살며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갯빛 사랑(만남)보다는, 비록 녹색만을 보여주는 소나무라서 싫증을 느끼게 할지 모르나 변함없는 그 고고함이란 너와 나의 만남을 대변해 주리라고 여긴다. 우린 변함없는 사랑 속에 사는 상록수 사람이 되자. 오직 주 하나님을 확실히 경외하며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채찍으로 서로를 위해 주고 이끌어주는 반려자가 되자. 그리해서 주님께 충성되고 착한 종이 되자.
근무 시간이 다가와 이만 그친다. 시험 치르느라 애썼어.
금주 토요일 상면 시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안녕.
1980.05.14.(수) 8:10 am 浩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