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종의 안면실인증 환자인지 모른다
뒤늦게 아버지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일종의 안면실인증(顔面失認症) 환자인지 모른다
1945년 어느 봄날, 한 청년이 군대 병원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운이 좋아 살았습니다. 귀 바로 뒤에 총을 맞았지만, 의사들이 수술한 후 이제 정상적으로 걷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비극적 이게도 총알이 얼굴을 인식하는 뇌 부분을 손상시켜서, 이제 그는 아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거울 속의 얼굴조차 낯설었고 그 얼굴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안면실인증(顔面失認症)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이 이 증상을 겪습니다. 심각한 안면실인증에 걸린 사람들은 주근깨 모양으로 딸을 알아본다거나 발을 끄는 걸음걸이로 친구를 알아보는 등 외형적인 정보나 규칙을 외워서 사람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제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종종 아버지를 '술 먹는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술집에, 술을 같이 마시는 지인 집에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때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라고 하면 제일 괴로웠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러 가지만 주변 어른들에게 창피했고, 딱히 모시고 오기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가요"라는 제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오히려 제게 역정내시고, 함께 술 마시는 분들과 대화 삼매경(三昧境)에 푹 빠지셨습니다. 나는 항상 실패했고, 언제인 지 모르지만 늦은 시간에 아버지는 귀가하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물 달라고 하시며, 여지없이 어머니의 타박을 들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러 나가실 때에는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하셨습니다. 언제 곡식을 뒤집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동생 돌봐야 하고, 소 꼴을 먹여야 하고, 텃밭에 풀을 뽑을지 결정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저를 사랑하셨지만, 저는 너무 자주 아버지를 “일, 규칙만 제시하는 사람,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만 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는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전 아버지의 자식을 향한 속 깊은 애정과 희생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또 왜 그리 오랜 시간 서툴게 일하시며 술을 마셨는지, (중·고등학교 때, 저는 새 교복을 입는데) 아버지는 똑같은 낡은 바지만 입으셨는지, 그리고 왜 매일 밤늦게 귀가해서 수첩에 메모를 하시며 제게 영어 단어나 문장을 외우게 했는지 저는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찮은 아버지로 싫어했습니다.
내가 일종(一種)의 안면실인증 환자인지 모른다.
이 두 이야기가 실상 같은 것임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저는 6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말하자면 일종의 안면실인증을 갖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제 아버지를 진짜 사람으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귀찮은 규칙만 보고, 넓고 큰 사랑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안면실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술 마시며 어머니와 싸우신 아버지를 사랑이 많은 분으로 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수많은 규칙만 보였거든요. 어쩌면 아버지께서 자식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알면서도, 과연 자식들을 사랑하시는지는 속으로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찐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제가 그런 사람이었고, 내가 일종의 안면실인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생이란 규칙을 지키고 어떤 추상적인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자식들을 온전히 사랑하심을 알았지만, 저 스스로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사랑보다는 제 자신의 생각 규칙과 세상살이 기준에 더 골몰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진정으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내가 거친 삶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심각한 인생의 고민을 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기 주저할 때마다, 이젠 내 자식들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며 한숨 쉴 때마다, 아버지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아버지의 놀라운 지혜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어떠한 고민도 담박 해결할 수 있고, 깊은 사랑의 힘으로 내가 또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뒤늦게 아버지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종의 안면실인증 환자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아버지 그리는 마음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