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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Jan 24. 2024

제 곁에 오고야 말 것이에요

영원히 붙잡아야 할 사랑이 있으니

제 곁에 오고야 말 것이에요




지면 위의 별빛 마냥, 가느다란 불빛 아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숨 조이는 연약한 한 사람!

      

하루의 종지부를 찍는 이 간도 영원히 붙잡아야 할 사랑이 있으니,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기다림과 오래 참음의 당신과 그리고 나의 쓸쓸하고 고독하기만 한 사랑….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 코끼리를 연상하면서 딩동댕 가냘픈 피아노에 하루의 작은 시간을 나눠주고 고달프지만, 세련된 스타일로 앉아있을 미래를 그리는 것은 외롭기만 해가는 당신과 나의 찬란한 미래와 흡사한 모습일 거예요.

   

   

겉잡을 수없는 이 그리움! 


꿈과 환상이 아닌 현실의 자신을 되돌아볼 때, ‘그래도 참 약하구나, 참기가 힘드나 보지?’하면서 떨리기만 하는 두 발을 힘차게 누르면서 희미하게나마 자신은 많은 시험을 당하고 있음을 날로 실감합니다.


          

만나고 싶은 浩兄 씨!


정녕 요즈음의 저의 심중을 헤아리는 당신이라면, 아니 똑같은 마음이라면 사정을 불문하고 제 곁에 오고야 말 것이에요. 그래서 듬직한 한마디를 건네주면서 다시 멀리 사라질 거예요. 하지만 제 곁에 와주십사 부탁하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고래힘줄 같은 돈이 길바닥에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당신을 알고 있는 뭇사람들의 이목이 작게나마 거슬립니다.
셋째는 당신은 깍쟁이라서 참고 견디고 말 것입니다.    

 

첫째는 아직은 우리의 사랑에 시련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를 주시하는 가까운 사람이 어린것이 오빠 말 듣지 않고 건방지다고 무시하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제가 첫 번째 문제는 해결할 수도 있으나 자신감이 서지 않을지도 모를 浩兄 씨가 문제입니다. 결론은 처량한 신세라는 얘기랍니다. 내 마음 세종대왕께서 만들지 못했을 단어를 빌리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세종대왕이 나보다 낫다고 느껴요.

    

춥고 매서운 서울의 겨울 날씨를 두려워하면서 종종걸음 극히 불완전한 걸음을 걸어야만 했던 겨울, 그리고 아픔들…. 시골 마당에 자울자울 졸고 있는 병아리들의 집단을 연상하면서 평화롭게 이 따뜻한 봄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소생하는 계절 속에 좌절하지 않고 그 기관들이 정상이 되어 오는 환희의 순간들을 맛보면서, ‘수많은 시간의 방황이여 내 곁에서 멀리 가다오. 이제 영원히 바람 불지 않는 안식처에 내 영혼과 몸을 맡기었노라.’ 소리 높이 외치면서 ‘사랑하는 이여, 졸지 말고 먼 곳에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라. 밖으로 밖으로, 고통과 탄식 없는 곳으로 열심히 뛰쳐나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가소로운 존재이고, 浩兄 씨의 살아온 생활 앞에도 가소롭게만 생각되는 희미한 자신. 아마 사랑한다는 것조차도 浩兄 씨는 유치하게 보인 것처럼 承弟는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여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浩兄 씨!

편지로만 아니라 실제 만나는 기회가 많다면, 나의 생활을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텐데, 실제보다 마음을 더 알 수밖에는 없는 안타까움도 많답니다.  

    

어린애가 되고 싶어도 어른의 생각밖에는 할 수 없다는 浩兄 씨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아마 많은 체험을 실제로 했다는 얘기겠지요. 그 나이에 비해서(… 이해하겠어요. 그 마음을…)  


    

浩兄 씨!

불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가정 얘기를 잠깐 해드리죠. 아빠께서는 자식 장가를 그렇게 보내고 싶어 하시더니, 결국 2명을 처리해 버렸죠. 엄마께서는 ‘며느리에게 밥이나 편히 얻어먹자’ 하시고 기대가 컸을 거예요. 지금 하나같이 부모님 곁에 떨어져 나갔고, 홀연히 두 분만 큰 집을 지키시게 되었어요. 막내딸과 셋이서 아마 시골 학생들을 하숙시키면서 사시고 계신답니다. 작은오빠는 막내 오빠와 같이 새언니가 밥 해 주고, 장남 오빠는 서울에서 살게 되었으니, 어찌 이 쓰라린 아픔을 지켜볼 수 있겠어요. 험하고 무서운 바다와 싸우시며 길러준 자식들이 이제는 하나도 필요 없는 비극이 되고 만다니, 탄식하며 쓸쓸해하실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저는 뼈를 깎는 아픔을 느끼면서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마음뿐인 걸 어찌합니까? 나라도 부모님 모시고 살고 싶지만 모든 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그 24시간이란 시간을 부모님을 위해 살지, 실제로 생활하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마음만의 사랑, 이것은 아마 위선자 인간의 마음일 거예요. 그 헌신, 그토록 유별나신 무조건 헌신이야말로 가슴 저미는 사랑일 거예요. 지금 당장이라도 엄마께 고단해서 '엄마 곁에 갈래' 하면, 나를 그리도 아끼시는 엄마가 내려오라 하실 거지만, 나 자신을 버리기에는 아주 더 무서운 고통일 거예요. 머지않아 광주에서 그냥 엄마 아빠 곁에서 살고 싶어요. 19살 때부터 부엌에서만 사시는 엄마, 하루라도 제 손으로 밥을 잡수시게 해 드린 후 시집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먼 곳에서 직장 생활해 버리니까 정말 이제는 부모의 슬하를 완전히 떠났구나 싶어요. '장남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자기의 직장 문제 때문에 부모님을 멀리하고 애처가·공처가·경처가가 되어 부모님을 외롭게 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몰라요.  


        

浩兄 씨!

헌신하는 생활, 사랑을 헌신이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것은 지난 1년의 나의 생활입니다. 편지로는 쓸 수도 없거니와 별로 실감도 나지 않을 거예요. 만나서 얘기한다면 놀랍도록 기특하게 여겨줄 텐데, 마음뿐인 사랑: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浩兄 씨를 사랑하는 마음.


     

浩兄 씨, 남녀의 혼전(婚前) 사랑이란 이렇듯 가슴 아픈, 실행할 수 없는 마음뿐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을 거예요. 실제로 헌신할 수 없는 현실일지라도 浩兄 씨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말로나마, 마음으로나마 긍정하며 살고 싶어요. 오히려 자주 만난다는 것은 거추장스럽거나 부담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분별력과 자제력이 강한 浩兄 씨!


아마 承弟는 의식적인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돌했구나, 기억되지만 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형광등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벌겋게 되어 어두워서 글씨가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함께 있다는 것, 참 좋은 건가 봐요. 함께 있었던 시간을 생각합니다. 만날 수 없는 이 시험 이상, 다른 시험을 줄 생각은 마세요. 못 만나는 이 고통이 나에게는 큰 시험이 되니까요? 만나지 못하면 사진도 보내고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꼭 가르쳐 주어야 보낼는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안녕히.  


        

197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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