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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Jan 29. 2024

오라비한테 딱지 안 맞도록 각오해야 하겠죠?

많은 소망을 가져다주는 사람

오라비한테 딱지 안 맞도록 각오해야 하겠죠?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쩜 아름다운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라 할 때, 매우 필요하다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서 과거의 미래였던 지금이 너무 상이(相異)할 때, 지난 꿈들을 기억해 내는 일은 불필요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집착에 그 전부를 내걸고, 온갖 것의 산물들을 그것에서부터 받아내려는 것으로 여겼다면, 크나큰 아픔을 낳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을 해요. 

         

대나무는 대나무처럼 자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텐데, 다른 모습으로 자라야 하는 걸까요? 

아주 너무 기나긴 시간을 아픔과 고통으로 아롱져버렸고, 웃음을 잃어버리고 냉정하고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그처럼 지독스럽게 돌변해 버리는지를, 인간의 생각으로는 놀랄 일이에요. 스스로 죽음을 자청하는 생각 속에 남는 세월을 소모해 버리려는 무지(無知), 오만불손한 마음... 아주 무섭게 만들어 버리는 게 무엇이었기에 그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인지... 온통 칠흑 같은 장막 속에 자신을 어두운 베일로 덮어버리는 위험한 사고는 삶에 환희나 기쁨,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려는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되며, 결국은 삶을 거부하게 되어 버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거듭나는 생활은 위의 모든 영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오직 마음의 평화를 얻어 실천하는 믿음 위에 굳건히 서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언제 그렇게 고통을 당했나? 하듯이, 기억에 조금도 남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살아가다 보면 엉뚱한 어느 날, 갑자기 무서움은 엄습해 오고 나 혼자서는 아주 처절해져 가는 모습으로 죽어있는 해골을 보는 듯, 고통은 다시 찾아와서 머리를 미치도록 만든답니다. 즉 이는 두통을 불러일으키며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고통을 줍니다. 똥통들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에요. 



심리적 불건강은 육체적인 불건강으로 표출됩니다


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거예요. 그 결과 시력 장애를 초래했지만, 심하게 되면 눈이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곤 한답니다. 어떠한 결과를 초래한 실체로 보이는 피상적인 죄의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이라면 용서를 받으면, 쉽게 평온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만든 고통 아니 세상에 만들어 놓은 고통이기에, 이는 수많은 노력과 훌훌 털어버림과 소망과 목표를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이어요. 그럼 그 목표를 달성하면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되는데, 아무리 발버둥질 쳐봐야 제자리인 것을 어찌할 수 없더라는 것이에요. 세상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모든 욕망을 무마시켜 버리는 것이랍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마음속 깊은 사랑이 숨어 도사리고 있어야 할 텐데,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소망도 사라져 버렸나 봐요. 


갑자기 세상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들이 더 되살아나 요즘에 험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주님을 믿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자신을 아끼는 삶을 추구해 가는 나에게 돌연 회오리바람이 쉬지 않고 불곤 합니다. 아픔을 잊게 해 주신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답니다. 절대 주님 앞에는 오만이나 교만하지 않아요.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사랑을 날마다 감사하면서, 은근하고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 사랑의 감정은 샘솟듯 풍성해지고 맑아지고 있어요.


지금의 현실,
지금 자신의 존재를 저 멀리서 뜯어볼 때,
여기에 많이 장식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간다면,
결코 남보다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 현실에 맞게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아무 탈도 없을 거라는 거예요.          


본래의 자신은 명랑·쾌활·깔끔한 성격이었지만, 성격의 이중성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생각 여하에 따라 본래의 자신은 살아나는 법. 없는 기운이지만 한 곳에 모아서 원만하고 예쁘게 가꾸려고 해요. 아주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온갖 지적이고 넘치는 재치로 자신을 가꾸고 있으니까요. 

         


위에 표시된 것에 대해서 쓰려고 해요

갑자기 저는 우울해 버리더군요. 직장생활도 기쁨으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아주 참을 수 없다는 것은 지겨울 만큼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삭막함, 쌓이고 쌓인 히스테리(hysterie)들을 해소할 길이 없기에... 성격이 조금 사나운 사람이라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바보처럼 참기만 하기에 온갖 짜증은 가득가득 차곡차곡 가슴에 쌓이고 말아요.


직장↔집으로, 아주 즐겁기보다는 귀찮고 흥미 없는 현실이에요. 밤이 없다면 남는(직장 근무 시간 외) 시간에 밖으로 나간다면 조금은 후련해질지도 모르는데, 여기에도 너무 제약이 많기에 딱 잘라서 행동에 옮기지 못해요. 위의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이 기쁨에 넘칠 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 자체가 기쁨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요즘 이런 결과로 불면증이 와버렸어요. 잠이 오지 않아 온갖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깨질 듯 아파지는 머리. 아마 머리를 다 뽑아버리면 쾌감을 느낄 정도로... 얼굴은 화색을 잃고, 시력은 떨어지고, 당신에게 편지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아마 긴 시간 동안이 되지 않나?' 생각했죠. 



갑자기 친구의 편지 8장으로 변해버렸어요


목포에서 학교 다닌 애인데, 자기의 운명을 나에게 물어오는 글이었어요. 나를 필요를(로) 느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이 세상에 이렇게 길고 큰 화제를 나에게 물어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두통은 사라져 버렸어요. 편지 하나로 이렇게 큰 해결이 된다는 것을 우습게 느끼겠지만, 그렇게 됐어요. 


주님께 기도하기를 마음의 평화만을 되뇌었어요. '저의 고통, 슬픔일랑 하나도 없이 주께 맡기오니 사랑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항상 웃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의욕과 용기를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고, ‘저와 더불어 부대낄 수 있는 인간들을 많이 주세요’라고 했어요. 결과는 온통 평화를 얻었고,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온몸과 마음을 바쳐 찬송하고 기도했어요.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전화를 걸려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고 돌렸는데, 당신이 나오더군요. 즉 당신을 실감하기 위해서 전화 했을 거예요. 저에게는 실감이 중요해요. 상상만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거든요. 나는 많이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자아를 탄생시킬 거예요. 지금도 옛날처럼 상상 속에서 사람을 대하고 사랑을 한다면. 즉, 움직이는 가슴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보이지 않는 먼 곳의 사랑보다, 즉 먼 곳의 사람보다 늘 지나치는 엿장수 아저씨가 나를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저에게 많은 소망을 가져다주는 사람, 浩兄 씨!     


‘모래 위에, 아 반석 위에 쌓은 집’ 찬송가를 불렀어요. 성공의 길은 영이나 육체적인 면에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보채고 부대끼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어요. 

              

토요일에 올 때는 12시 안에 표를 사가지고 오세요. 오후 4시 정도 도착하면 될 거예요. 처음 길이라 집에 도착한 시간이 1시간이 넘으니까요. Country boy 께서 수고하시는 데 대해서 고맙고 기쁜 일이에요. 잘못 생각했군요. 어쩌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는지요? 만약 오실 때는 성경책만 필요할 거예요. 결정이 됐다면, 편지로 연락해도 좋고 그냥 와도 좋아요. 9**-8*** 번으로 전화하세요.      


코스(course)를 쓰겠어요

광주고속에서 하차(강남종합터미널) → 청량리(휘경동) 방향 버스 86번이 있어요. 이쪽으로 오는 버스를 타야 하니까.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세요. 입이 필요할 때니까. 사람에게나 차장에게 물어보세요.   

   

① 86번을 타고 휘경동에서 내리게 되면, 그때 봤던 정거장이 아니에요. 그곳에서 공중전화를 거세요. 전화 있는 곳도 물어보면, 몇 발짝만 뛰면 있으니까.

      

② 버스를 두 번 탈 때는 종로 가는 것을 타서 5가, 4가 등에서 내려 휘경동 가는 버스를 타면 돼요. 이때도 역시 반대로 가지 않도록. 여기에서 내리면, 그때 본 정거장이니까 우리 집은 알 거예요. 전화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2층이니까, 내 방에서 푹 쉬고 있으면 돼요. 

    

①번이 더 간단하죠. 

생각이 싹 달라지면 안 오셔도 괜찮아요. 오신다면, 오라비한테 딱지 안 맞도록 각오해야 하겠죠? 오시든 안 오시든 하시는 일 잘 해결하세요. 주님의 사랑으로 더욱더 강건하게 매사에 임하세요. 그리고 저의 편지도 사실은 쓸데없는 얘기를 쓰는 게 많아요. 형식 차려 쓰려면 지루하기 때문이에요. 읽는 사람이 기분이 좋든, 나쁜 것이든 생각 안 해요. 그냥 쓰니까요. 정성 없다고 생각 마시고, 그래야 할 말이 있죠. 

    

浩兄 씨도 안 쓰면 좋으련만, 실은 실제로는 안 그렇다 하더라도 편지는 써도 좋아요. 늘 온상처럼 쓴다면 쉽게 지루하니까요. 안녕.



1979년 3월 11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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