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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Feb 01. 2024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사랑받는 것이 아니어요

뜨겁게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사랑받는 것이 아니어요       




생각지도 않았던 편지가 왔군요. ‘내가 보낸 편지는 아직 오늘쯤 받겠구나’ 했는데, 답장이군요. 어제 전화할 때 물어본 편지가 이거로군요.                



浩兄 씨!

숟가락으로 세 번 밥을 뜨면 한 끼니를 치우는 사람이에요. 옆에는 상이 준비되었지만, 양면지(兩面紙)를 가방 속에 두어서 지금은 없어요. 동생 노트 한 장을 여지없이 찢어버렸어요. 어제 보내려 했던 편지와 함께 보내겠어요.  

         


늘 변화무쌍한 나 자신을 모르겠지요? 


실은 저 스스로 자문해 보지만, 나의 주체를 가누지 못하고 마는군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반문은 당연하답니다. 편지 자체로 저의 심리나 현상을 판단하지 마세요. 이중성은 항상 ‘나’라는 것을 알아요. 즉 가식과 허식이 없는 순수한 이중성이지, 결코 그 편지가 나 자신과는 무관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숨은 깊은 마음을 솔직하게 쓴다는 것은 나 자신 너무 미성숙하고 말아요. 하나도 숨김없이 가슴속에 숨은 얘기나 사랑을 다 쓰는 사람이에요. 단지 이 세상에 혼자한테만 즉 이는 번복되는 마음이 못 되는 것이에요. 어떤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한 번이라는 얘기예요. 듣기에 좋든 나쁘든 당신은 사랑스럽게 받아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된 둘의 사랑이 되는 것이랍니다. 아무리 해도 실제 본심을 보일 수는 없어요. 나 자신으로 완전히 화(化) 하기 전까지는 ….  


   

나는 당신에게 절대 자유를 주지 않아요. 한 편으로는 많은 구속을 주고 당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내가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사랑받는 것이 아니어요. 지독스러운 욕심쟁이예요. 쉽게 말해서 ….

         

내 동생은 언니를 미워한다나요. 순전히 편지밖에 모른다고. 그래서 지금 몰래 쓰는 거예요.


           

주 안에서 생활하기를 진실로 바라고 계실 浩兄 씨의 속마음을 너무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반발 의식으로 난 현실적인 편지를 원하는 것이랍니다. 또 현실적인 편지를 읽게 되면 신경질 나고 짜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늘 이렇게 새롭게 느낌을 받는 것이 좋거든요. 당신에게서 받는 편지 내용, 뉘앙스(nuance), …. 모든 것은 하나도 싫거나, 위안이 없거나 그래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기  뜨겁게 당신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나 자신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언급하지 말라 한 거예요. 당신은 거기에 나를 가엾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전화 통화에서처럼 편지 하나하나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아요. 그리고 여자는 어떻게 살기를 바란다는 사실도 구태여 알리지 않아도 잘 아는 사실. 귀찮아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버린다면, 나 자신이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될 거라는 것을 모르세요. 변화무쌍한 내 마음대로 뜯어고치긴 하지만, 반면 많은 자유를 나 스스로 주고 있어요.  

              

아주 즐겁기만 일주일을 맞이하고 있어요.

안 오시더라고 오겠다는 생각을 한 당신을 많이 기다리고 말 테니까요.



주님 뜻대로 주 안에서 참된 사랑을 위해 노력하려는 우리에게 주님은 함께하실 줄 믿고 항상 기도하겠어요. 그럼 건강하세요. 안녕.


         

1979.03.12.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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