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 이야기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내가 ‘내 인생의 득템’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내 인생의 득템은 훌륭한 아내, 자랑스러운 아들과 딸, 그리고 42년간 대한민국 교육을 담당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교육자로의 정년퇴직은 가장 큰 보람 덩어리 득템이었다.
교육은 ‘바람직한 인간 형성의 과정이며 보다 나은 사회개조를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난 시절 되돌아보니 교육을 통한 바람직한 인간 형성의 과정은 몹시 어려웠다. 끊임없이 기다려야 했고, 참아야 했다.
퇴직 후, 나는 중도입국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들과의 교수·학습 과정에도 기다림, 인내가 있다.
첫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00는 한국어를 못해서 학교생활에 지장이 많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점심 먹었어? 무슨 반찬이 맛있었어. 짝꿍 이름은 뭐야? 선생님 이름은? 아빠 좋아해? 엄마도?...” 눈만 말똥거릴 뿐 아무런 말도 안 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말한다. 비록, 짧고 틀린, 서툰 말의 연속이지만 나는 연신 ‘그래그래’하고 머리 끄떡여주며 엄지 척해 준다.
글씨 쓰기 시간에는 “선생님, 쓸 수 있어요”하며 칠판에다 글자를 틀리게 쓴다. 나는 틀린 글씨를 고쳐주며 “잘했다”라고 칭찬하며 깜찍한 보상(補償)을 해준다. 글자를 읽고 쓰는 기쁨을 맛보는 아이에게 적절한 보상 강화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매일 낱말카드와 읽기 책을 반복해서 읽힌다. 학습지를 지도할 때에는 어김없이 제시문을 읽게 하고 아이들이 써온 글자 한 자 한 자를 5번씩 반복해서 읽게 했다. 틀린 글씨는 반드시 10번 써서 큰소리로 읽어야 통과시켜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요’, ‘싫어요’, ‘안 해요’라고 말한다. 순간 짜증이 났지만 칭찬해주며 매일매일 반복해서 문자를 보고-읽고-쓰게 하니 제법 글눈을 떠간다.
지난 금요일에는 “선생님, 내일 할아버지 집 가. 일찍 집 가야 해”, “그렇구나. 잘 다녀와라”(???) 잠시 후,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내일 할아버지 뵈러 가려고 체험학습계획서를 냈다”라고 했고, “수업 시간에 제법 말을 잘한다”며 “교육의 힘이 크다”라고 했다.
가까이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다. 한글을 떠듬떠듬 읽으며 쓰고 말할 때, 뛸 듯이 기분이 좋다. ‘몰라요’, ‘싫어요’, ‘안 해요’라고 말할 때는 얄밉다. 하지만 한국어 교육은 계속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42년의 교육 경험 가운데 효과적이었던 기제(機制)를 활용했다. 즉, 아이들의 심리를 읽으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칭찬하는 교육을 실천한 것이다. 그랬더니, 짜증이나 화보다는 신바람 나고 즐거운 교육을 하게 되었다.
중도입국 자녀, 비록 학생이 세 명이지만 나는 다양한 감정 교차와 답답한 상황을 접하고 있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데 다수의 학생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복잡한 상황으로 얼마나 스트레스(stress)를 받고 있을까? 오늘날의 교육 현장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흔히 상실의 시대라고 말하는 세상, 무의미한 증오로 점철된 세상, 관계의 단절과 가정의 해체와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일선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수업 외에도 돌봄, 학생 안전, 방역 전문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심정의 양면성(兩面性)을 교사들도 가지고 있을 텐데, 심리적인 안정성이 무너진 교사들의 심정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하고 위로해주어야 할까?
차라리 선생님들에게 왕짜증을 멀리하고 학생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칭찬하는 교육을 해주길 부탁드리고 싶다. 그러면 오히려 교사 자신 스스로 위로받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활기찬 수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대한민국 교육자, 오늘도 모두 파이팅(fight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