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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Nov 09. 2022

중도입국 자녀의 SOS, "왜요?"

한국어 교육 이야기

태국 학생 2명, 독일 학생 1명(중도입국 자녀, 이하 A, B, C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가르쳤는데,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딱히, 래포(rapport) 형성할 필요 없이 금방 학습활동을 시작했다. 세 학생의 학습 성향을 알고 있기에 무리 없이 학습할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교재를 펼치고 1단원 '여러 가지 낱말을 익혀요', 학습주제: '대상을 나타내는 낱말 익히기'에 대해 설명한 후, "우리 몸의 각 부분의 이름을 읽고 써보자."라고 말했더니, "왜요?, 쉬워요., 안 해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몸의 각 부분의 이름을 잘 알고 있으므로 B 학생의 "쉬워요., 안 해요"라는 말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A 학생의 "왜요?"는 너무 황당했다. 불과 1년 전, 한국어 공부를 할 때에는 학습 태도가 진지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왜요? 라니 학습지 문제 푸는 건데"라고 말했더니, A 학생은 또 "왜요?"라고 말했다.  이때,  한국말을 잘하는 독일 학생 C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A야, 왜요? 란 말이 더 이상하다. 선생님이 문제 풀라 하잖아" 그러자 A 학생을 즉시 퉁명스럽게 "왜"라고 말했다.




중도입국 자녀들이 변했다. 말대꾸를 다. 나는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자" 그랬더니 역시 "안 해요., 왜요?"라고 말했다. '왜 그러지? 학생들에게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겼을까?' 오히려 내가 궁금했다. 이렇게 아이들과의 첫 수업 날은 혼란함과 당혹감 연속이었다.


A 학생의 담임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수업 시간에 '안 해요., 왜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데, A 학생이 빠른 사춘기?, 반항기? 에 접어든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놀려고 하지만 잘 끼워주지 않아서 어울리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어 강사인 나한테만 '안 해요., 왜요?'라고 한 건가?', '한국어 선생님을 무시한 걸까?' 속상하기도 하고 몹시 서운했다.


그래서 'A, B 학생 한국인 아빠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A가 집에서도 말 안 듣고 엄마에게 반항하며 '안 해요., 왜요?'라고 자주 말하고, B는 언니를 따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의견을 종합해 보니, 아이들이 변했고 이른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다. 학교 생활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지만, 아직은 한국말이 서툴러서 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중도입국 자녀들의 한국어 능력 부족이 원만한 학교 생활이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하루빨리 생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도록 지도하고, 교과와 연계한 학습 한국어까지 확장해서 지도해 주려고 계획을 수립했다.  아울러, A, B의 아버지에게 자녀들의 학습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A 학생은 "아빠가 다른 공부는 안 해도 되니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라고 했다며, 사뭇 학습 자세가 진지해졌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여전히 '왜요?'라고 말하며 돌발적인 학습 부적응 현상은 여전했다. 나는 '몰라요., 안 해요., 왜요?' 의미와 느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었고, 이후 또 '왜요?' 하면 선생님도 '왜요?'로 맞대응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맞대응했더니 A 학생은 몹시 당황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A, B 학생의 경우, 그동안 학교·학급 생활에서의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인한 교과 학습 장애, 원만한 교우 관계 형성에의 어려움, 학교 생활 부적응 등 다양한 스트레스(stress)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왜요?'는 중도입국 자녀들의 SOS이지 않을까? 코로나19로 학생들은 학습결손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도입국 자녀에게 코로나19는 기초·기본 학습 결핍을 비롯하여 심각한 학습 부적응, 학생과의 정서적 교감과 소통, 언어적 사회 작용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특히, 언어 소통 면에서 어쩌면 가장 빠르고, 쉽게 배운 말이 '몰라요., 안 해요., 왜요?'였을 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말의 의미와 느낌을 확실히 모르고 사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벌써, 두 달째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어 수업도 학습의 질, 학습 태도를 향상시키는 본질은 만남이었고 학생과의 정서적 교감과 래포 형성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고 본다. A, B 학생은 원래의 학습 태도를 회복해서 '몰라요., 안 해요., 왜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행스럽다. 하루빨리 A, B, C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학교·학급·학습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중도입국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행복한 한국인 되는 날까지 이 열정 식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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