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가을의 끝자락에서 그녀와 나는 처음 만났다. 친구 따라온 그녀를 같은 교회에서 보았지만, 서로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가까워졌다.
전주시민회관에서 음악회를 보고 떠들썩하게 나오다 소란 속에서 마주친 눈빛, 급히 쫓아가던 내 발길은 뒤엉키고, 뒤따라 올라탄 버스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던 그녀의 머리카락, 그 순간의 알 듯 모를 듯 엷은 미소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녀와의 첫사랑은 마치 한줄기 빛처럼 따스하고 반짝였다.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미래를 꿈꿨다. 서점과 거리의 구석구석이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샬롬'으로 시작된 편지는 가명으로 배달되었고, 언덕 위에서 바라본 별들의 속삭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눈빛까지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어느 가을날 편지에는 아무런 말없이 윤동주의 '서시'만 가득 적혀 있었다. 파란색 잉크로 꾹꾹 한 글자씩 눌러쓴 그 시는 내 마음까지도 푸르게 물들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암송하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죽는 날, 하늘, 부끄럼, 잎새, 바람, 괴로움, 별, 노래, 마음, 죽어가는 것, 사랑, 길, 밤, 스침...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이 밤이면 밤마다 물고기가 되어 천장을 헤엄치고 놀았다. 그 시어 하나로 짧은 글짓기를 하다 잠이 들곤 했다
겨울방학이 되자 훈육선생님 눈길을 피해 가끔 풍년제과에서 만나기도 했다. 교련복이나 사복을 입고, 우유에 단팥빵을 먹고서 다가공원을 걷거나 홍지서림에서 시집을 읽고 감상을 교환하곤 했다. 나의 무딘 감수성을 지적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으며 놀려대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지금 이렇게 아마튜어 작가로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연애편지를 줄기차게 쓰면서 문장력이 발전한 것도 한 몫하였다.
깊은 겨울날, 전신주의 불빛이 흐려지며 함박눈이 내리던 가로수 길, 영롱하게 빛나는 별빛을 보며 손가락으로 북극성과 카시오페아 자리를 찾아 헤매던 밤... 그녀가 겨울바람에 손을 호호 불었어도 수줍어했던 나는 감히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렇게 고2 겨울이 지나갔다.
봄이 되어 고3이 되자 본격적인 입시전쟁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만남은 점점 어려워졌다. 공부에 쫓기고, 야간자습에 밤을 지새우며 그녀에게 점점 소홀해져 갔다. 편지를 쓸 겨를도 없었고,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편지도 뜸해졌다.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만나지 못했다.
시험 준비로 지쳐가던 어느 가을날, 그녀가 보내온 모처럼의 편지는 타의에 의해 내 손에 전달되지 못했다.
그것은 오해가 불러일으킨 운명의 엇갈림이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홍지서림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울면서 돌아갔다는 친구의 질타 속에, 우리는 결국 서로의 꿈을 위해 헤어지기로 했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중앙교회'였을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고등부 모임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듯하다. 서로를 의식하며, 우리는 말없이 눈빛만 교환하였다. 그 순간, 파도처럼 밀려온 수많은 감정들...
그리움은 아쉬움이 되었고, 망설임은 후회가 되어 미련으로 남았다. 못다 한 이야기는 가슴에 묻었다. 첫사랑의 끝은 헤어짐인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로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딱 1년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녀는 결국 고향의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서울로 올라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가끔씩 문득 떠오르는 그녀와의 추억은,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순수하고 따뜻한 순간들을 되새기게 했다.
첫사랑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하얀 손 한 번을 잡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플라토닉 러브의 완성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꿈과 사랑, 그리고 성장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아쉬운 끝맺음은 우리의 이야기의 끝이 아닌,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였다고 믿는다.
지금도 가끔씩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녀와 함께 보았던 별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서시'를 가만히 읊조려본다. 첫사랑의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한 나 자신을 기억하며...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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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설렘은 인간 경험의 가장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감정 중 하나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적, 심리적, 생리적 상태를 통합적으로 변화시키며, 삶의 궤적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첫사랑은 보통 청소년기에 시작되며, 이 시기는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첫사랑의 설렘은 문학과 예술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인간 경험의 보편성과 그 강렬함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소설, 시, 영화 등이 첫사랑의 설렘과 그로 인한 감정적 소용돌이를 묘사하며, 이를 통해 독자와 관객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사랑의 설렘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간 경험이다. 이러한 설렘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중요한 열쇠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