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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

점점 늙어가는 나를 혐오하는 법

by 글사랑이 조동표

어느 날, 목소리에서 윤기가 빠져나갔다. 나는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은 허공에서 마르듯이 시들었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서야 깨달았다.

이제 내 말에는 설득력도, 생기도 없구나. 감정이 아니라 의무로 소리만 내는 내가 거기 있었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동작이 버겁고, 이름 하나 떠올리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전에는 지갑 놓고 나온 나를 탓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스스로의 무능함에 면역되고 있는 중이다.

그게 더 무섭다.


한때 나는 나를 좋아했다.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았다.

내 안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고, 하루하루가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변주곡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거울을 보면, 그 모든 가능성의 끝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날 쳐다본다.

굵은 주름과 영혼 없는 눈동자, 축 처진 어깨와 묵직한 침묵.

과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내가 싫다. 미워진다.

무엇보다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나를 꾸짖지 않는데, 나는 매일 스스로를 혼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냐’고, ‘좀 더 나았어야 했지 않느냐’고.


자기혐오란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나 자신이 들이대는 잔인한 잣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감정도 언젠가는 끝날까.

아니, 끝나지 않더라도 조금 무뎌지기는 하겠지.


늙어간다는 것, 그것은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잃어가는 것을 헤아리는 대신, 그 빈자리에 생긴 침묵과 여백을 익혀가는 과정이랄까.


오늘도 나는 늙어가고 있고, 오늘도 나는 나를 혐오한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감정 안에 어렴풋한 연민은 섞여 있다.

사랑까지는 아닐지라도, 공감은 하고 있다.

이 초라한 중년의 내가,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 늙어간다는 것


거울을 봅니다.

눈가에 자디잔 주름이

이마에는 굵직한 주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목소리는

낮게 깔리고,

기억은

자주 길을 잃습니다.


걸음은 느려지고,

숨은

쉽게 가빠옵니다.


무거운 건 짐이 아니라,

내 몸,

그리고...

내 마음입니다.


나는,

가끔

나를 미워합니다.


예전 같지 않은 나를

차마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천천히

물들어가는 일.


잊힌 것 너머에는

침묵이 있고,

느린 걸음 사이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를 안아봅니다.


주름진 내 등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따뜻하게

토닥입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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