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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와 QR코드

기억을 읽는 기술

by 글사랑이 조동표

어느 날,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서 있다가 문득 바코드 리더기의 ‘삑’ 소리에 깜짝 놀라 생각이 멈춰졌다. 그 짧고 날카로운 소리 뒤에 감춰진 세계를 들여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제는 항공기를 탑승하러 갔다가 이제 모바일 탑승권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아직 종이 탑승권도 통용이 되고 있지만 모바일 QR코드 인식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익숙함은 종종 중요함을 덮는다. 하지만 바코드나 QR코드 같은 기술은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어, 그 존재를 새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자료를 찾아보니 바코드는 194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식료품점에서 유통업체 사장이 “계산대 줄을 좀 줄일 수 없을까?”라고 한탄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푸념을 들은 드렉셀 공대의 대학원생 둘, 버나드 실버와 노먼 우드랜드가 바코드를 구상했다. 그들은 점과 선의 패턴을 이용해 제품 정보를 인코딩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기계가 읽는 ‘언어’를 만들었다. 그 언어는 이제 전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십억 번씩 스캔되고 있다. 계산의 효율을 위해 태어난 기술이, 지금은 물류, 재고관리, 의료, 심지어 사람의 신원확인까지 아우른다.

QR코드는 일본의 덴소 웨이브라는 회사에서 1994년에 개발했다고 한다. 기존 바코드는 한 방향으로만 정보를 읽을 수 있었고 저장 용량도 제한적이었다. 덴소의 엔지니어들은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읽을 수 있는 ‘2차원’의 코드를 고안했고, 그것이 바로 Quick Response Code, 줄여서 QR 코드였다. 그들은 그것을 특허로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널리 쓰이도록 개방했다.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QR코드는 그 후 한동안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20년,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QR코드는 부활했다. 식당의 메뉴판에서, 출입 기록에서, 백신 접종 인증서에서, QR코드는 인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정보의 흐름을 빠르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냈다.


나는 종종 경영자로서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기술은 효율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기억을 저장하고, 인간의 행동을 기록하며, 미래로의 연결을 돕는 언어가 아닐까.


바코드는 물건 하나하나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QR코드는 우리 일상의 단편들을 담아낸다. 어떤 기술은 거창한 비전을 내세우며 등장하지만, 세상을 진짜로 바꾸는 기술은 오히려 묵묵히, 조용히 사람의 삶에 스며든다.


문득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QR코드를 본다. 예약 시스템에 연결된 작은 스티커 하나. 누군가는 그것을 한 장의 종이로, 단순한 인쇄물로만 보겠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간 이어진 기술의 역사, 아이디어의 전환,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사람을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거나,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하거나, 혹은 더 넓은 세계로 연결해 주는 것.


바코드도, QR코드도 그 소리 없는 다리였다. 오늘 우리가 만드는 어떤 시스템이나 제품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일상에서 그런 ‘다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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