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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2

아파트 입구에서 들은 대화 한 조각

by 글사랑이 조동표


요즘은 길을 걷다가도 삶의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내가 익숙하다고 믿고 있던 세계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오후였고, 나는 퇴근 후 그저 동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입구 벤치 옆에서 중2쯤 되어 보이는 남녀 학생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려던 찰나, 여학생의 말이 내 귀를 붙잡았다.


“응, 그래. 네가 나를 좋아해 주면, 내가 너를 도와줄게.”


잠깐 걸음을 멈출 뻔했다. 장난인가? 진담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여학생은 하트까지 만들어 보이며 제법 진지했다. 남학생도 웃음기 하나 없이 대답했다.


“그래, 내가 너 좋아해 줄게. 그니까 나 도와줘. 근데 왜 그런 조건을 내거니?”


여학생은 되레 당당하게 말했다.


“어쨌든 네가 나를 좋아해 줘야 나는 너를 도울 수 있다는 뜻이야. 나 좋아해 줄래? 안 좋아해 줄래? 좋아해 준다 이거지?”


그 짧은 5초에서 10초 사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들은 것도 아닌, 엿들은 것도 아닌 묘한 충격을 받은 채로 서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걸 협상의 조건으로 꺼내는 시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감정이란 건 아예 말로 꺼내지도 못할 만큼 두렵고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하루가 길고 밤은 더 길어졌고, 말 한마디 섞는 데도 몇 주, 몇 달이 걸렸다. 좋아한다는 말은, 고백이라기보다 거의 ‘마지막 카드’ 같은 거였다.

간신히 편지에 윤동주의 '서시'를 적어 보내며 숨겨진 자기 마음을 대신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도 감정을 조건처럼 사용하면서도 서로를 납득시키고 있었다.


놀라운 건, 여학생이 먼저 “나를 좋아해 달라”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내 어린 시절, 좋아해 달라고 말하는 건커녕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조차 숨기기 급급했던 우리들에게는 전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여학생의 당당하고 솔직하며 주도적인 태도. 어쩌면 부끄러움이나 눈치를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부러움이 일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맞장구치듯 대답하던 남학생의 모습. 그건 마치 과거 시대의 남녀 역할이 완전히 바뀐 듯한, 아니 어쩌면 역할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세상은 변했다. 아니, 아이들은 벌써 변했고, 나는 아직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를 기준 삼아 오늘 일에 놀라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우리가 끝내 꺼내지 못했던 그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꺼내고 있었다.


오늘 아파트 입구에서 들은 그 대화 한 조각이,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 어린 시절과 작별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표지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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