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he Substance'를 보고
-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망령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온갖 이름이 내려가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화장실에서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봤다.
혹시 나도 ‘그 물질’을 갈망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The Substance>는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었다.
미(美)와 젊음에 대한 집착, 그 끝에 있는 파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 어른거린다.
영화 속 주인공 엘리자벳은 한때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던 배우였다.
화려한 레드카펫, 아카데미 트로피, 전 세계 팬들의 환호.
하지만 지금은 케이블 채널의 에어로빅 프로그램에서조차 젊은 후배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한물간 배우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배우 데미 무어의 또 다른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을 완전히 해체하듯 연기한다.
과거의 영광과 상처, 그리고 잊히는 존재로서의 자의식까지 모두 끌어안고 처절할 만큼 직진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대단한 울림을 준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물간 여배우에게 정체불명의 USB가 배달된다.
그 안엔 ‘젊음을 되찾아주는 물질’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물질을 몸에 주입한 순간, 삶은 비틀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심리극처럼 전개되지만 곧 장르는 호러물(바디호러)로, 마침내 광기와 파괴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끈질기게 유머를 놓지 않는다.
잔혹하면서도 웃기고, 피비린내 나면서도 기묘하게 매혹적이다.
- "무엇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칸영화제 각본상이라는 타이틀보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묻는 방식’에 있다.
"당신은 얼마나 더 젊음을 좇을 건가요?
그 대가가 바로 당신 자신일지라도?"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구도 늙고 추해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노화를 저지하며 산다.
피부과에 가거나 화장품을 써서 피부를 다듬으며 관리하고, '위고비'를 맞거나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살찐 몸을 졸라맨다.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을 되돌리려 애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지나칠 때, 우리는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
때로는 자존감, 때로는 진짜 ‘나’ 자신을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거울 앞에 선 나는
생각보다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온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는 무엇을 내어주었을까.
<The Substance>는 결국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집단적으로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신화를 소비하고 있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잘 지켜내고 있는가?"
호러 영화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인간 드라마이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관객의 피부 아래로 파고드는 이 영화는, 마치 우리가 외면해 온 질문들을 피와 살, 웃음과 공포로 다시 꺼내놓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대체 어디까지를 내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