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견디는 존재
– 여름날의 몸뚱이에 대하여
요즘처럼 더운 날엔, 정신줄부터 놓기 쉽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멍해진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순간순간이 늘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잠시 멈춰 서 본다.
정신만이 아니라, 몸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더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내 몸뚱이가 왠지 낯설다.
피곤하고, 늘어지고, 잘 안 움직인다.
이놈의 몸이 귀찮고, 미워지기까지 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에어컨 아래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밖에 나서면 머리가 지끈하고 속이 울렁인다. 계단을 오르면 무릎이 욱신거리고, 허리가 뻐근하다. 움직이는 곳곳마다 결리고 쑤신다. 이게 내 몸이 맞나 싶다.
가만 보면, 몸이란 게 참 까다로운 친구다.
나오라는 데는 나와 있지 않고, 들어가 있으라는 데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볼품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건,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볼 때다.
언젠가 한창 때는 이 몸이 나에게 즐거움이자 기쁨이었다. 운동장에서 뛰고, 바다에 몸을 던지고, 밤새 춤을 춰도 끄떡없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이 몸은 덥다고 비명을 지르고, 아프다고 하루 종일 찡얼댄다.
씻는 것도 귀찮고, 옷을 고르고 입는 일도 성가시다. 무엇보다, 마음먹은 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니 서글프다.
어쩌면 내 몸은, 나를 천천히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 몸이 나를 견뎌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덥고 아프고 불편해도, 매일 나를 일으키고, 밥을 먹고, 걸어가게 만든다.
비록 더디고 성가시지만, 이 몸이 나를 ‘살아 있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아침, 씻고 난 몸을 한번 더 바라봤다.
볼품없고 지친 모습이지만, 고맙다고 작은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버텨줘서 고맙다. 오늘도 나랑 함께 살아가자.”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