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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제주 오름 여행기 제4편

다랑쉬오름, 천국의 문을 지나

by 글사랑이 조동표

아침부터, 다랑쉬오름에 올랐다.

이틀 전 올랐던 노꼬메오름보다 경사는 완만했고, 길은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돌길이 많았던 노꼬메오름과 달리, 이곳은 야자수 매트와 나무 계단길이 이어져 있었다.

걸음마다 부드럽게 발을 받쳐주는 길.

그 덕분에 숨이 차면서도 마음은 편안했다.


야자수 매트가 부드럽다.
군데군데 보이는 현위치 표지판(왼쪽)
오르는 길에 보이는 아끈다랑쉬오름(오른쪽), 그리고 잘 경작되어 있는 밭들

왕복 한 시간 반. 그중 오르는 데 30분,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절반의 시간이 더 들었다.


산 정상에 우묵하게 팬 굼부리가 통째로 다 보인다.

분화구 가장자리에는 소사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걷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햇빛이 가지 사이로 부서지며 하얀 나무줄기와 작은 잎들이 반짝였다. 터널처럼 이어진 길은 마치 천국의 문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소사나무 군락지 안내판
소사나무 터널

소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얀 줄기가 자작나무를 닮았다.

그 곁을 지나며 문득, “나무도 빛을 받는 법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환하게 말이다.


소사나무 밑둥

-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


정상에 오르는 동안 녹색 밭과 푸른 바다, 그리고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에는 아끈다랑쉬오름이 아기처럼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파노라마 모드로 찍은 사진에는 수많은 오름들이 겹겹이 담겼다. 하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니, 눈으로 본 풍경에는 미치지 못했다. 빛이 담긴 바람과 향기는 사진 속에 남지 않아서일까.


정상에서 둘러본 사진

11월 초의 다랑쉬오름은 억새의 계절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일렁이고, 억새들이 춤을 췄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서울보다 10도는 따뜻한 제주의 공기 덕분에, 중턱에 이르러서는 겉옷을 벗어 젖힐 정도였다.


정상은 억새가 장관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오름의 여왕’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따개비오름을 여왕이라 하지만, 내 눈엔 다랑쉬오름이 더 고결했다.

급경사 계단이 다소 힘들긴 했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풍경이 모든 수고를 잊게 했다.


스코리아는 자갈 크기의 염기성 화산 분출물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크게 무리 없는 코스이긴 하지만, 중반부터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야 비로소 정상이 보인다.

그러나 그 순간, 바람과 억새, 새파란 하늘이 ‘잘 왔다’며 미소 짓는 듯했다.


정상의 깔때기 모양 굼부리(우묵하게 팬 곳)는 너무나 아름답다. 둘레 1500m, 깊이 115m.

- 다랑쉬오름 코스 팁


총 소요 시간: 왕복 약 1시간 30분

코스 특징: 나무 계단 + 야자수 매트길

난이도: 중상급(노꼬메오름보다 완만하나 중간 급경사 존재)

볼거리: 소사나무 군락지, 억새 군락, 성산일출봉과 우도 조망.


오름랜드마크인 다랑쉬오름 설명문

- 붉은 달과 바다의 밤: 동복포구의 레드문 낚시


송당 '제이팜정육식당'에서 흑돼지로 점심, '미스터밀크'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셨다. 조천읍에 위치한 '신촌덕인당'에서 보리빵을 샀는데, 50~100개씩 들고 계산대를 향한다. 입소문이 나면 대박이 나는 곳이 제주이다.


오후 늦은 비행기로 아내는 먼저 집으로 떠났다. 나는 이제부터 주말까지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공항에서 친구 S를 픽업해, 제주에 정착한 지 5년 되는 친구 W가 사는 동복포구로 향했다. 간단히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뒤, 낚싯대를 꺼냈다.


아름다운 노을과 동복포구의 등대

낚시는 붉은 달이 떠오르는 밤부터 시작되었다. 포구 건너편에는 유명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불빛을 비추고 있었고, 바다는 잔잔했다.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스러지고 나자, 반대편 하늘에서 둥근 붉은 달, 레드문이 떠올랐다. 어제가 보름이었으니, 오늘의 달도 거의 둥글었다. 달이 바다 위로 오르자 밀물이 들기 시작했고, 물고기들이 움직였다.


동복포구 건너편의 런던베이글뮤지엄
레드문

오늘은 거뜬히 백 마리는 잡겠네!”

첫 고등어 한 마리가 잡히자 친구들이 웃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작은 물고기들만 줄줄이 걸려들었다. 치어는 잡자마자 방생했다. 수십 마리의 생명을 놓아준 셈이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밤 9시가 되자, 붉던 달이 흰 달로 변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 때, 드디어 고등어가 잡히기 시작했다.


밤 9시의 달무리

낚시 초보자도 낚을 수 있을 정도로 물었다. 다만 시장에서 보던 큼직한 30cm 고등어는 아니고, 꽁치보다 약간 두꺼운 크기였다.

그마저도 우리는 귀하게 여겨졌다.


치어를 방생하려는 모습(왼쪽 위), 등푸른 생선 고등어(왼쪽 아래), 일찍 죽은 물고기들.

숙소로 돌아와 칼질에 능한 친구 P가 손질을 맡았다. 피와 내장을 빼고 머리와 꼬리를 정리한 뒤,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내일 저녁, 매운탕으로 끓여 먹자.”

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밤의 기억이, 그렇게 냉동실 속에 잠들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다시 그 바다의 맛을 꺼내 먹을 것이다.


다랑쉬오름에 있는 망곡의 자리는 조선시대 효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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