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
묻지 마 살인은 이제 그만!
나는 강남역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만 36년이었다. 그래서 강남역은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모임도 많이 있었고 술도 많이 마셨고 맛집도 많이 다녔다. 물론 한잔 하다 보면 노래방도 갔었다. 어제도 모임이 있어서 모처럼 강남역 5번 출구로 나들이하였다. 저 멀리 사거리 건너 10번 출구가 보인다.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강남역 10번 출구는 대학 다닐 때부터 뉴욕제과가 있었기에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뉴욕제과 앞에 가면 선남선녀들이 서로를 기다리다 만나고 웃고 부둥켜안았던 명물 장소였다. 우리의 20~40대까지만 해도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만나는 것이 일상적일 정도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장소였다.
그런데 여기서 묻지 마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 비슷한 또래의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는 기가 막힐 충격이었다. 사건 당시에 출장 중이라 궁금했던 그곳에 일부러 가봤던 기억이 난다.
추모자들이 모여 있었고 추모의 글, 노란 개나리 같은 포스트잇의 물결, 헌화,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
사진 몇 장으로는 담을 수 없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언제부턴가 정신질환자의 범죄, 성범죄, 여성혐오나 멸시... 이런 단어들이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여성가족부가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여성은 약자이고 항상 보호해줘야만 한다. 화장실은 남녀가 분리해서 써야 마땅하다. 그나마 CCTV 덕분에 범인이 잡혀서 다행이었다. 떠들썩하고 젊음의 발랄함이 가득한 해방구였던 이 장소가, 분노와 애도의 장소로 변한 것이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사건이 나면 분노하지만, 그러다 일주일이면 또 잊힐 것이고, 정부의 대책은 말뿐이며, 결국은 스스로 알아서 자기 몸을 지켜야 한다.
참으로 답답하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낭만을 간직한 채 2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두려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그 시간도 다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떠들썩한 목소리의 젊은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명절 전이지만 한잔 해야 할 불금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