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눈이 떠지자마자 오늘 하루의 귀성 플랜을 세워본다. 이번 명절은 주말을 포함한 전반부가 비교적 여유가 있으니 1박 2일로 설 전에 고향에 다녀오기로 한다. 고향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의 사랑이 남아있다. 어제 새벽에는 30년 만에 어머니를 꿈에서 뵈었다.
오늘 귀성은 일종의 서프라이즈 깜짝쇼이다. 조카에게만 미리 카톡으로 연락하고, 아버지께는 당일에 연락함으로써 이 시국에 귀성을 원치 않는다는 아버지를 꼭 뵙고 올 셈이다.
03:30 번쩍 눈이 떠짐. 비몽사몽으로 잠을 못 이룸. 하루 일정 점검 시작.
05:30 지방출장처럼 1박 2일 가방을 쌈.
06:00 운전하면서 먹을거리 점검. 샤워. 간단한 아침식사.
설 선물로 가져갈 등심 곶감 과일 등을 챙겼다. 임인년 호랑이 봉투에 복돈을 추가하고 T맵으로 고속도로 교통상황을 점검하니 아직은 원활한상태.전주까지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이른 시간대임에 저으기 안심하며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이번에는 사정상 동행하지 못하는 아내가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가 제법 무겁다. 복장을 거울에 비춰본다.
아버지께 뵙고 싶어 내려간다고 문자를 보낸다. 아버지 답장은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겨 MRI를 찍어야겠다고 하신다. 나는"괜찮을 거예요"라고 답하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함을 느낀다.
07:00 차에 시동을 건다.
남아있는 기름으로 탈 수 있는 거리가 350km.귀경 시에 급유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두지만 경제적인 운전으로 연비를 높여 350km 이내로 왕복해 보고자 다짐한다. 편도 210km 거리지만, 왕복 거리에 추가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450km 정도는운전해야 할까?
집을 나서니 깜깜하고, 라디오를 켜니 어느 종교방송에서 아침설교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마음이 경건해지며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08:00 천안 근처에 오니 밀리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은 1번 국도로 안내한다. 갓길에 세워진 3중 추돌 장면을 보면서 안전운행을 다짐한다.
국도는 신호만 잘 받으면 너무나 한산하다. 충청도의 자연경관을 눈으로 즐기면서 휴대전화 앱으로 조영남 메들리를 듣는다. 기억나는 히트곡은 '제비'였는데, 이런 번안곡뿐만 아니라 남의 히트곡까지도 잘 불러주니 장르가 다양하다.모란동백, 지금, 사랑 없인 못 살아요, 딜라일라, 이런 노래들도 귀에 착 감긴다. 조영남 히트곡 중에 아는 노래가 20곡은 넘는구나. 신호대기 시에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오늘 저녁에 한잔할까? 의사를 타진해 본다.
09:00 어느덧 국도를 거쳐 천안논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정안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계열사에서 만든 비타민음료를 마시며 불현듯 35년간 꼬박꼬박 월급을 받게 해 준 직장이 올해는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에서 시동을 거니 하이패스 잔액이 2천 원 남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와, 얼른자동충전기를 찾아 10만 원을 충전한다. 똑똑한 기계음 안내양이 나를 일깨워준다. 내 평생 모은 재정 상태도 누군가 주기적으로 경고방송을 해주면 좋으련만...
10:00 군데군데 막히기도 했지만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이젠 정체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진다. 그 옛날 경부와 호남고속도로를 부러워하던 귀성길이 떠오른다. 칭얼대는 꼬맹이 둘을 달래 가며, 더 짜증 내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스틱으로중고차를 몰았다. 보험사에서 준 만 원짜리 교통지도 책자를 곁눈질해 가며 논두렁 밭두렁길을 누볐고, 하염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12시간을 넘기기가 예사였다.
당시에는 번번이 고속도로가 막히니 매번국도와 지방도를 전전해야만 했다. 조수석의 아내는 웬만한 국도와 지방도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는데, 우리 딸만큼은 절대로 지방 남자와 결혼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12시간은 각오하고 떠나야 하는 귀성길에 이골이 났을 터... 나는 언제나 뻥 뚫린 고속도로에 차를 실어보나 애태운 적이 많았다. 어쩌다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해서 달리다 2차선으로 좁아진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왜 여기 사람들은 죄다 고향을 떠나서살고 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어느덧 전주 톨게이트를 지난다.그래도 비교적 덜 막혔음에 감사한다. 오늘은 그나마 일찍 서둘러 다행이었다. 월드컵경기장을 지나고 팔복동 공단길을 거쳐 백제로로 진입한다.
11:00 평화동 아파트 단지에는 나 같은 귀성차량이 더해져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주차장이 보인다.
간신히 차를 주차하고 보따리를 손에 들고 아버지댁 초인종을 누르자, 어제 서울에서 귀성한 조카들이 문을 열어주고아버지께서 나를 반긴다. 원래 아버지 혼자서 살던 집을 여동생과 합치고 명의이전까지 해줬기에 이제는 아버지댁이라 부르기도 뭐 하다.
여동생은 큰 조카를 데리고 시댁에 갔고, 성격 좋은 작은조카가 이번에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내 아들은 언제 팀장이 될지 생각해 본다. 남자의 병역기간이 직장에서는 손해로 작용하는구나.
아버지의 어지럼증 대책을 알아보러 의사친구에게 전화해서 큰 병은 아닌지 확인하고 서로 안부를 전한다. 친구는 기립성저혈압으로 진단하며, 주무시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나면 안 좋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한다. 환갑이 지난 친구는 경영상 병원문을 닫고 요양병원에 취업하러 준비한단다. 봄이 되면 서울로 놀러 와서 옛 친구들을 찾겠다고 약속한다.
12:00 집에서 멀지 않은 대구탕 맛집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단골집 식당 사장이 아버지를 반긴다. 난청이 심한 아버지를 위해 볼펜으로 써가며 의사친구의 처방대응책을 설명했다.
식사 후 유일하게 문을 연 약국을 찾아 약과 핫팩을 사들고 지팡이에 의지한 아버지를 모시고 걸으며 기립성저혈압에 대해 조심하시도록 안내를 했다.
팀장이 된 조카는, 같은 MZ세대로서20대 부하직원들이공감은 되지만, 타이트한 업무방식을견디지 못하고 참을성 없이 쉽게 이직하고야 마는그들만의 행동양식을 경영진에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끼인 입장에 처해있음을 푸념하였다. 나는 이른 나이에 7명이나 직원들을 리드해야 하는 대견한 조카에게 나의 경험담을 토대로 조언을 해주었다.
13:00 어머니를 기리는 맘을 표현하러 아버지를 모시고 모악산으로 향하였다. 제법 쌀쌀한 산기운을 느끼며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진입로를 걸었다.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걷던아버지는, 구이저수지를 앞에 둔 김일성 시조묘가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임을 설명하셨다. 어머니의 혼백도 그 근처에남겨져 있다면서 왜 아버지가 모악산을 좋아하는지 구구절절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동의했다.
14:00 선녀바위 인근 등나무쉼터에서 산을 향해 기도하며 잠시 어머니를 기린다. 코로나 시대에 급증한 마스크족 등산객들이쉴 새 없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우리 부자의 주위를 지나쳐갔다. 오늘은 명절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로 오르는 모습이 많구나.
15:00 아버지를 댁에 내려드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태평동 커피숍으로 향했다. 다들 연로한 부모님과 자식들 걱정에 더하여 각자의 앞날과 건강을 얘기한다.
태평동 중앙시장은 건재하나 전매청은 사라지고 대신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구나. 연금, 퇴직금, 주식, 부동산, 대선 이야기... 우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초중고 친구들은 살아온 삶과 처한 상황은 달라도 공통점이 많음에 위안을삼고 있다. 다들 50년 지기 들이다.
16:00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와중에 다른 친구가 저녁을 같이 먹자는 연락이 왔지만 밤 9시까지밖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코로나시대의 엄중한현실을 자각하고 시간이짧음을 이유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17:00 요즘 살아계신 어르신들은 보통85~90세가 많은데점점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니 자식으로서 어떻게 모시느냐며 서로의 견해를 공유하였다. 내 자식들은 결혼할 맘도 아예 없어 보이고, 막상 결혼해도 내 집을마련하고 애 하나낳아서 키우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 작금의 현실문제를 토로한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고 짧은 만남 긴 이별을 맞이한다.
18:00 오랜만에 여동생이 차려 준 식사를 아버지와 같이 하며 식단의 영양공급 상태를 살펴보았다.
육류를 입에 대지도 않으시니 너무 적은 단백질 섭취량이 걱정된다. 오랫동안 자주 씹어드시니 소화는 잘 되실 듯하나 균형 잡힌 영양섭취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읽은 글이 생각나서 아버지 발을 씻겨드린다. 손발이 선비 같은 아버지의 발은 발톱이 죽어있는 앙상한 발이지만 아직은 피부가 부드럽다. 평생을 이 발로 뛰고 걸으면서 어린이를 청소년으로 양성하셨다. 숭고한 교육자의 발을 어루만지며 내 자식들은 과연 내 발을 씻겨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먼저 천국에 가신 어머님은 아버지의 발을 기억하고 계실까? 온갖 상념에 사로잡히다 짧지만 의식 같은 세족을 깨끗한 수건으로 마무리한다.
아버지랑 동숙하려 했던 1박 2일 계획이었지만,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따름을 감안하여 일정을 변경하고, 나는 아버지와 몸을 부여잡고 정을 나누며 이별을 한다.
19:00 주차장에 가보니 일렬주차로 꽉 밀집된 상태라서 내 차를 빼기가 어렵다. 연락처도 없고 중립주차도 안 되어 있는 앞차를 밀어내지 못하고 몇 번이나 운전대를 조작하여 비집고 나오려다 화단옆 시멘트 울타리에 차체가 닿는 금속성 비명이 들려온다. 한 번도 찰과상 하나 없던 내 차에 드디어 흠집이 났겠구나 분노하던 순간, 앞차 주인이 허둥대며 나타난다. 도대체 주차매너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아줌마를 탓하자니 나만 손해다. 분통을 터뜨리자니 이미밖은 춥고 어두워졌다.갈길이 멀어 화를 억누르고 참았다.어두워진 아파트 단지를 서서히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든다.
20:00 정안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T맵은 귀경길이 원활한 상태임을 알려준다.
22:00 밤길이지만 평균 시속 100km로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여유롭게 운전하면서 노란색 주유 경고등을 의식한다. 남은 거리는 120km인데 연료 바늘은 바닥을 가리키니 경제적 운행이었지만 급유를하기로 한다.
죽전휴게소에서 셀프서비스로 가득 채우니 꼬박 10만 원이 들어간다.
22:30 귀가 후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샤워를 했다.
23:00 1박 2일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피곤했던 당일치기 귀성을 눈마사지기로 위로하며, 겨우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