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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최현지 Jan 31. 2024

[서평] <별빛창창>은 사랑인 것을

[최작가, 그녀가 사는 세상]

< #별빛창창 >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펴냄

- <별빛창창> 제목을 보았을 땐 무언가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 딸의 사랑을 의미한게 아닐까 싶다. 곽용호란 이름을 들었을 때 이건 분명 남자 시점으로 썼을꺼야 싶었지만 오해였다. 용과 호랑이.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한 이 이름은 29살 여성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1% 스타 드라마 작가, 곽문영이다. 전체적인 소설 속 이야기는 친절하지가 않다. 어쩌면 불편하게 느껴질법한 엄마와 딸사이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광혜암에서부터가 어쩌면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간이 아닐까. 엄마가 사라진 이유가 치매라는 것이, 나를 잊어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까. 한 평생 엄마와 비교당하면서 살았다는 곽용호는 결국 엄마를 몰랐던 게 아닐까. 엄마로서의 그녀의 부재로 인해, 그녀의 성공된 삶을 온전히 지지해줄 수 없었던 딸의 마음이 어떤 마음 일지. 건강할 땐 모르지 않는가.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듯이, 사람의 마음도, 엄마의 사랑도 어쩌면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겠지. <별빛창창>을 읽으면서 엄마와 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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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들도 이해 가지 않았고, 서로 죽이니 마니 하면서 싸우다가도 제 아이 낳고서는 우리 엄마에게도 나처럼 예쁠 나이가 있었다며 갑자기 착해지는 이야기는 가장 최악이었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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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필요로 한적이 없다. 엄마의 삶에는 이곳이 더 중요하다. 이곳에서 평생 상상조차 못 했던 무시무시한 병증의 실체를 알게 되고,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고, 남에게 끼니를 떠먹이고, 또 아기처럼 받아먹으면서 나는 내내 이상하게 불안했다. 이유를 헤아리기 힘들었는데 장현의 질문때문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이 서늘함이 무언이었는지를. 그 서늘함은 내 안의 진짜 나와 남들이 봐주길 바라는 이상적인 나와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들에 눈물짓고, 이들을 내치거나 이들의 기능만을 필요로 하는 가족이란 놈들에게 분노하고, 그리고 남몰래 선행을 베풀어온 엄마에게 감동해야만 했다. 내가 이런저런 매체에서 배우고 체득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랐다면 응당 그리해야만 했다. 특히 내가 엄마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닮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뉘우치고 깨닫고 발전해야 했다. p.16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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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두 번 꾸었다. 첫 번째 꿈은 내가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의 모습들이었다. 여자의 말을 자장가 삼아 베개에 머리를 묻고서 내내 상상했기에 꿈에까지 이어진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꿈의 내용은 내 주관과 소망이 반영되었을 게 분명하다. 내가 없었다면 곽문영은 악착같이 살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글도 그렇게 열심히 안 썼을거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드라마 작가는 되지 않았을 거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독립 같은 건 꿈에도 못 꿨을지 모른다는, 그저 내 존재의 이유를 증빙받기 위한 무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잠시 깨서 옆에 누운 여자의 작은 윤곽을 보다 다시 잠들었을 땐 다른 꿈을 꾸었다. 호랑이와 용이 나오는 꿈이었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내가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 할 수 있었다. 깨어나서는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옆에 누운 여자 역시 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p.32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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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난 후 든 생각은 단막 드라마를 시청한 듯한 기분이었다. 절절한 신파극이나 달달한 멜로는 아닌, 담백한 드라마 감성이어서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별빛창창>을 원작으로 드라마 대본이 쓰여져도 훌륭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 같다. 미혼모이지만 성공한 드라마 작가, 곽문영과 엄마의 딸로 사느라 쉽지 않았던 곽용호, 그리고 그녀의 첫사랑, 장현, 등장인물들의 여러가지 대화와 행동, 지문을 보면서 캐릭터들의 성격을 분석해보고 그 안에 담긴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약간은 판타지적인 느낌도 받았지만, 인간의 인생이란게 어쩌면 ‘판타지’ 그 자체가 아닌가. 광혜암이 실제로 있다면 한번쯤 방문해보고 싶었고,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상상도 해 보았다. 소설가 설재인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고, <별빛창창>을 통해 그녀의 팬이 되었다. 또 하나의 소설가를 알게해 준 밝은 세상, 고맙습니다.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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