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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최현지 Feb 14. 2024

[소설 서평] <덕률풍> 읽고난 후

[최작가, 그녀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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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률풍 > 덕을 펼치는 바람
#이승민작가 / #미래인 펴냄

전화기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시절,
통신 주권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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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 개통을 앞두고 아버지가 세운 전신대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일제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잡아가고, 어릴 때부터 알던 이웃들은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다. 조선 최고의 통신원을 꿈꾸던 강식이는 잡혀간 아버지를 대신해 사건의 실마리를 좇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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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전화기를 부를 때 덕률풍이라고 했다. 전화기는 영어로 텔레폰(Telephone)이라 하는데, 먼 곳의 목소리라는 뜻이다. 이 텔레폰이라는 말의 소리를 따서 처음에는 전화기를 덕률풍이라고 불렀다고. 한국 최초로 전화기가 등장한 것은 1882년. 청나라에서 전기를 배운 조선 유학생이 처음으로 가져왔다. 이후 1896년 고종이 행정을 위해 최초로 전화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덕률풍을 사용하던 시기는 암울 그 자체의 시대다. 조선 통신 정책은 일본의 조선 수탈을 용이하게 만드는 체제로 흡수되고 마는데, 1902년 일본이 침탈 야욕을 구체화하던 시기, 조선 통신권을 빼앗으려는 일본과 이를 저지하려는 통신원 학도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덕률풍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소설화 되었는데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대 상황과 변화를 터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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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무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을 때 나는 그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내보내 주세요. 아버지도 나도, 무슨 권리로 이렇게 사람을 가두는 겁니까? 길용아, 순돌아, 나 좀 꺼내줘!”
그러나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빠르게 봉수대를 떠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힘을 빼더니 머릿속까지 저릿하게 했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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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갔더니 웬 불빛이 보였다. 불빛을 향해 달려가는데 눈이 떠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르새 나링 밝아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병수 삼촌을 만나서 전신대를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옅은 눈썹을 늘어뜨리고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찾은 다음 바로 경무청으로 갈 거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뗐다. “어머니, 어제는 말 못했는데 전신대에 톱자국이 있었어요. 그것만 봐도 아버지가 잘못 세워서 전신대가 쓰러진 게 아니니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거예요.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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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 글씨 보이십니까? 사고가 나던 날에 제가 새긴 글씨입니다. 아버지가 전신대를 세울 때마다 글씨를 새겨 넣곤 했는데 이번엔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새겨 넣었지요. 그리고 여기 밑동 말입니다. 누군가 톱으로 잘랐는데 이것도 보이십니까?“
병수 삼촌은 반사적으로 내가 가리킨 곳을 보려다가 멈짓했다. 경무사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병수 삼촌은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이 톱자국만 봐도 아버지는 죄가 없다는 걸 알 텐데 경무사님 전신대를 허술하게 세웠다며 내 아버지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작업장을 빼앗고는 그곳에 불법으로 군용 전신을 개설해서 왜군의 전쟁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경무사는 바로 반박했다. “전쟁이라니 당치 않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나는 그저 조선의 미래를 위해 개설한 것이다. 나라가 흥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신문물을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하니 통신기기들을 들여놓은 것이란 말이다.” 경무사는 노기를 띠며 근엄하게 나를 나무랐다.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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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역사가 담긴 발명품과 오랜 골동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작은 물건 하나가 세상을 바꿀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과거의 물건과 사람의 가치, 흘러간 역사에 대한 사실을 알고 과거 옛 선조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다시한번 깨닫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른들은 역사를 알지만 감흥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미래가 있다.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 할터. 일제 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겪은 잔인한 순간들, 그 고통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긴 역사소설이 더욱 많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날이 새롭고 신선한 청소년 소설을 출판해주시는
출판사 #미래인 감사합니다.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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