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는 수학여행에서부터 기억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 인가 가을 소풍으로 갔었던 그날의 첨성대는 크고 거대한 느낌 이었는데,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의 느낌은 웅장하지만 아담하고 정겹다. 가을밤, 살아 생전에 별도 달도 따다 줄 것 같은 외할머니를 만난 느낌이랄까. 부모님과도 참 자주 왔던 경주라 제 2의 고향같은 느낌이다. 부디 천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오. 지금은 폐역이 되었지만 가을이면 경주역도 그리워진다. 누군가의 가슴에 추억으로 남겨진 것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오. #가을날 #아름다움 #천년의미소 #국보 #경주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국보.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월남리(南里)라고 하였고, 계림(鷄林)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이 근방을 속칭 비두골이라고도 한다.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도 천문대(天文臺), 즉 천문관측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 갑자기 이에 대한 이설이 제기되며, 제단(祭壇)·기념물·불교관계 건축물 등의 여러 가지 설과 이견이 속출되었다. 이런 설에 대하여 종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천문대로 해석하는 연구도 물론 진행되었다.첨성대의 석재는 화강석(花崗石)인데 표면에 노출된 부분은 모두 다듬어져 있다. 석재의 개수는 종래 365개라고 하였으나 기단석까지 포함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정확히 365개는 아니다. 총 높이가 9.51m가 되는데, 홍사준(洪思俊)은 사다리 세 개를 마련하여 한 개는 지상에서 중앙 창구까지, 한 개는 중앙 창구 안에서 내부의 제19·20단의 ‘井’자석까지, 나머지 한 개는 제19·20단에서 제25·26단의 ‘井’자석까지 걸쳐서 정상의 ‘井’자석 안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오르내리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상부에 서거나 앉거나 또는 누워서 하늘을 관찰하는 데 매우 편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