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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을 보내며, 퇴사의 기록

나로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행보

by 라니

퇴사를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한 장의 종이를 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한 직장에서 28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성장했고, 울고 웃었고, 때론 힘들어도 버텼다.
회사가 곧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런 내가 퇴사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직장을 옮기고, 퇴사하고, 다시 입사하는 일이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사직서를 내는 일이 버거웠을까.

“어디 기업, 누구 부장입니다.”
이 익숙한 자기소개를 내려놓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다.
퇴직금이 지급되고, 4대 보험이 정리되고, 지역건강보험으로 전환되는 순간,
괜히 마음이 허전했다.

이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주부도 아니고, 미혼에 50대 초반.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도 고민된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퇴사를 결심한 건 아니다.
꽤 오랫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회사의 방향도 모르겠고, 새로 오는 임원들은 여자 부장이라는 이유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점점 일에서 멀어지게 했다.

일을 찾아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책임지고, 결과를 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필요 없는 자료를 내라고 하고, 이해도 못 하는 프로젝트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지치고, 회의감이 쌓였다.


나는 그래도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몇 안 되는 여자 부장으로서, 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내 인생보다 우선이었던 시간도 길었다.
휴가도 눈치 보며 썼고, 일이 몰리면 야근은 당연했다.

그런 삶 속에서 조금씩 회사 밖으로 나를 확장해보기로 했다.


여행작가학교를 다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내 삶을 회사 바깥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그 순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소식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왜 그만두냐”, “좀 더 있지 그러냐”, “같이 할 일도 많은데…”
그런 말을 들으며 문득,
‘그래도 나, 이 회사에서 인정받았던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두가 나와 잘 맞았던 건 아니다.
불편한 사람도 있었고, 부당한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내 몫을 해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게 경제적 안정도 만들어줬다.

그래서, 지금이 떠날 때라고 생각했다.

28년을 뒤로하고,
이제는 ‘회사 누구 부장’이 아닌,
‘나’로 살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퇴사를 위한 준비]

퇴사를 결심한날 여의도 야장 맥주집에서 ~


새로운 인생2막을 축하하며~
KakaoTalk_20250701_161907906.jpg 오래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퇴사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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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라 느낄수 있는 이 묘한 여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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