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는 택시

조금 번거롭고 느리지만, 여전히 연필을 들고 써 내려가는 것이 좋더라고요

by 최아름

회사를 옮겼다. 결론적으로 잘 한 선택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통장에 찍히는 액수가 소소하게 올랐다. 물론 작고 소소해서 올라봤자 뭐 얼마나 티가 나겠냐 만은, 몰스킨 노트와 연필 몇 자루는 충분히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새 회사는 이상한 동네에 있었다. 우리 동네보다 항상 훨씬 추웠고, 버스를 두 번 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 둥글둥글하게 생긴 우리 동네와는 달리 모든 것이 네모나고, 천천히 걷는 사람보다 씽씽이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강의 남쪽에 있는 동네 중에서도 유독 차가운 동네였다. (심지어는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끊긴다.)


그런 차가운 동네에 출근을 하던 날, 나는 택시를 탔다. 원래 느린 성격을 지녀 나의 대중교통 목록엔 늘 택시가 있었는데, 오늘도 역시였다. 하지만 오늘은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 원래 지각하는 날은 늘 그렇지. 그 순간 반가운 안내 진동이 울렸다. 그동안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입니다. 원치 않으시면 취소해주세요’라는 문장이 덧붙었단 것.


사실 기사님이 꽤 멀리서 오고 계셔서,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지만 따라온 뒷 문장 덕에 꾹 참고 기다렸다. 자칫 잘못하면 지각할 수도 있겠는데? 라는 마음이 들었으나 기사님의 ‘가고 있어요’라는 메시지까지 더해져 취소 버튼에선 손가락이 멀어진 지 한참이었다.


기사님은 도착 전까지 계속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가고 있다, 거의 다 왔다는 등의 짧은 문장들. 문장들을 보고 있다 보니 기사님이 오셨고 나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 기사님께 내 인사가 전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뒷자리엔 아이패드 같은 것이 하나 놓여있었다.


패드는 나와 기사님의 소통창구였다. 기사님은 본인의 패드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시며 ‘역삼동?’이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기사님이 아닌 음성 인식 기능이 탑재된 패드에 대고 대답했다. “제가 잘 몰라서 내비대로 가 주세요! (쩌렁쩌렁)” 음성인식은 ‘내가 잘 몰라서 내비대로 가 주세요’라는 약간의 반말 형태로 번역(?)되었지만 기사님은 쿨하게 오케이 사인을 보여주셨다.


덩달아 기사님(아니 패드)께 “빨리 가 주세요! (웃음)”라고도 말했다. 이 생경한 상황의 대화 속에서, 기사님은 이번에도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셨다. 지각이라 죄송하지만, 등의 말을 더하고 싶었지만, 글자 형태로 전달되는 내 말들이 예쁘지 않아 관두기로 했다. 모든 문장이 때아닌 마침표를 찍고 있어 내 말들은 전부 단호해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에.


뒷자리에 앉은 내가 초조해 보였는지, 기사님은 속도를 내주셨고 나는 정말 00분에 도착해 지각을 면했다. ‘여기서 내릴게요’라는 버튼을 눌렀고, 나와 기사님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패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걸 잊었다. 그래야 기사님께 전달되는 형태였는데도, 급한 마음에 기사님께 직접적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쳐버린 것. 내 마지막 말은 전달되지 않았겠지만, 조급한 마음을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택시를 타고 있는 내내 전해주신 따스한 손글씨에 화답하는 방법은 기계뿐이었던 날. 나 또한 온기를 담아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패드는 역시 마침표밖에 모르는 기계다.


손글씨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보다 노란색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더 익숙한 날들이다. 빠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시대이지만 반대로 느리게 행동한 덕에 손으로 대화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조금 더 느린 하루였더라면 기사님과 길고 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내가 탄 택시는 ‘고요한M’이라는 서비스다. 전용 어플도 있고, 티맵택시를 타면 운 좋게 만날 수도 있다. 기사님의 글씨체와 손 모양을 끊임없이 보고 싶다면, 또 조용하지만 온도는 따뜻한 출근길을 경험하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


여유로운 날에 탈 수 있도록 어플을 다운받아 둬야겠다. 그 땐 기계에 대고 감사하단 말을 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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