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애교가 많은 사람이에요

엽기적인 그녀 BGM, I believe~를 재생해봅니다.

by 최아름

실제로 애교가 많아요. 일부러 귀여운 척하는 건 아니고요. 남녀노소 모두에게 애교가 많긴 한데, 그게 또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도 더러 있더라고요. 그냥 애교 많은 엄마 딸이어서 그런 건데 말이에요. 근데, 요즘엔 애교가 통 없어졌어요. 삶이 각박해진 탓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BGM

-


최근 티빙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환승연애’를 봤다. 사실 티저가 나왔을 때부터 ‘뭐 이런 프로그램이 다 있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자칭 유교걸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포맷을 잠시 설명하자면, 헤어진 전 남자 친구, 전 여자 친구와 한집에 사는 것. 물론 이곳엔 다른 사람의 전 남자 친구, 전 여자 친구가 포함되어있다. 총 네 커플이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나 모르는 (구)커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대충 썼는데도 역시 나처럼 모두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짓고 있진 않은가.


하지만 일본의 ‘테라스하우스’를 비롯해 한국의 ‘하트시그널’, ‘썸바디’ 등 모든 연애 프로그램을 (사실 이런 취향을 갖게 된 건, ‘산장 미팅 장미의 전쟁’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 본 나는 이 프로그램의 예고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언젠간 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젯밤, 드디어 내가 이 프로그램의 1화를 보는 날이 왔다.


그래서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냐고? 역시 혀를 끌끌 찼다! 라고 하고 싶지만, 시작한 지 5분 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심하게 감정이입을 한 탓일까. 특별할 것 없는 장면에서 그냥 냅다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나를 울린 또 하나의 장면, 그건 바로 헤어진 애인이 써준 나의 자기소개서. 내용은 이렇다. 예를 들어 나와 헤어진 남자친구가 나와 함께 출연했다면, 그 남자친구가 ‘아름이는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편지에 적어주는 것. 출연자들은 서로 누구의 헤어진 애인인지 밝히지 않아야 했으므로, 티를 내지 않고 지나간 애인이 쓴 나의 자기소개서를 읽어야만 했다.


원래 지나면 기억이 대부분 미화되는 걸까, 출연을 마음먹은 사람들의 애인 소개서는 굉장히 따스했다. ‘내가 헤어진 것을 후회한 유일한 남자’라는 둥, ‘00가 이곳에서 다치지 않게 부탁한다’는 둥. 이럴 거면 왜 헤어졌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목에서 한참을 울었다. 만약 내가 나의 헤어진 사람을 향해 소개서를 쓰거나, 그가 나를 향해 소개서를 쓴다면 어떤 느낌인지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이겠지.


그래서 이 공간에, 마치 내가 나의 전 남자 친구인 척, 소개서를 써보기로 작정했다. 혼자 쓰다가 혼자 우는 건 아닌지, 온갖 청승을 떠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어디에 써보겠냐면서.


아마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할 것 같다. ‘아름이는 애교가 많은 사람이에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지만, 유독 저에게는 더 애교가 많아요. 힘들 때 가장 생각나는 건, 아마 그녀가 의도치 않게 부리는 애교가 아닐까 해요. 가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부리는 애교를 귀엽다며 설명해주곤 하는데, 아름이의 애교는 엄마로부터 온 것이구나 해요.’


나는 늘, 사랑하는 사람에겐 아낌없이 표현하는 걸 좋아했다. 그게 아마 이 사회에선 ‘애교’라는 단어로 통용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표현하는 어떤 것,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얘기하는 것, 그리고 결국 ‘사랑해!’라고 외치는 것까지. 그가 나의 일부가 되고, 내가 그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에 애교가 중간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애교 있는 사람이 되고, 내 애교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는 수단이 된다.


어젯밤엔, 이런 생각을 하다 큰일이 날 뻔했다. 내가 무언갈 보다가 ‘ㅠㅠ’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정답! 드라마보다 내 생각나서 울었다! 나 보고 싶어서 울었다!’라고 답장을 해 주던 밤이 그리워졌기 때문.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퉁퉁 부어 있어서 창피했지만, 딱히 보여줄 사람도, 이걸 보고 놀릴 사람도 없어서 그것대로 넘겨낼 수 있는 오늘이었다. 에세이 주제를 하필 애교로 잡았던 일주일, 나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보다 밤을 새워 울었고, 그걸 가지고 또 한 편의 글을 쓴다. 그래서, 나 지금 생각보다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편지쓰는 택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