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많은 아빠, 애교 많은 딸이지만 서로에겐 서툴러.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네? 라고 생각했던 적도, 뭔 맛인지 궁금하네? 라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다만 이런 생각은 했었다. 담배가 나한테 너무 잘 맞으면 어쩌지?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실제가 되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서 그런가. 20대 초반에 어쩌다 친구 따라 하나 피워 본 첫 담배, 목이 아프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불을 못 빨아들인다거나(?) 하는 등의 시행착오는 없었다. 어제도 피고 온 사람처럼 당연하게 담배를 맞이했다. 다행히도 내 기호식품이 되진 못해 지금도 담배를 안 피우지만, 20대 초반엔 아주 가끔, 담배가 나의 ‘감성 타임’을 채워주곤 했다. 슬픈 일이 있을 때(아마 이별 뭐 그런 거였겠지) 담배를 피우고 감성을 충전한 다음, 내 블로그에 글을 썼다. 드문드문 담배를 사서 1개 피우고 버리고 1개 피우고 버리고 하는 허세 가득한 ‘짓’을 했다. 말했듯 계속 들고 다니고 싶을 정돈 아니어서 그냥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 들이는 액세서리 같은 거였다.
20대 초반의 그 어떤 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엉엉 울다가 담배를 샀을 거다. 또 똑같이 1-2개를 피우고 그대로 집에 담뱃갑을 들고 왔다. 담배의 종류를 고를 마음도 없었던 터라, 그날도 친구가 피웠던 담배를 따라 샀다. 그 이름은 말보로 아이스 블라스트. 지금도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산 담배는 아닌 그것을 피우고, 집에 그대로 들고 왔다. 한 개비의 빈자리만 허용한 채, 빵빵하게 채워있는 담뱃갑을 책상 위에 덩그러니 뒀다. 그리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한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정신없이 잠만 잤던 나는, 눈을 뜨자마자 크게 웃고 말았다. 내 책상에 있던 아이스 블라스트는 사라지고, 국산 담배가 종류별로 있는 것이 아닌가? 새로 나온 제품부터 해서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그림의 제품까지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한참을 웃다가 엄마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뭐긴 뭐야. 네 아빠 짓이지!”라고 했다. 성인인 딸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 대신, 이왕 담배를 피울 거라 마음먹었으면 국산이 더 좋지 않겠냐는 아빠의 의견이 담긴 것이었다. 엄마는 딸래미 담배를 말리진 못할망정, 저게 뭐냐며 너희 아빠는 참 못 말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얘기는 거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나오는 우리 집 에피소드로 남았다.
대부분의 딸이 부모님에게 담배를 걸렸을 때와 우리 집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우리 아빠라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행동, 또 어쩌면 아예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 덕에 그날은 참 행복했다.
그날의 나는, 아빠 덕에 수많은 담배를 하나씩 피워보는 경험을 했다. 잠시 잠깐 나왔던 껌 맛 담배, 커피 맛 담배 등도 제일 먼저 피우는 트렌드 세터가 됐던 것이다. 아빠는 나중에 “그 담배들 친구들한테도 나눠줘~”라는 얘기도 곁들였다. 덕분에 담배를 피우던 내 친구들의 담뱃값도 소소하게 줄었던 것 같다.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널 많이 사랑한다, 아낀다 등의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냥 매일 저녁, “밥 먹었어?”라는 말만 물어본다거나, 가끔 저런 식으로 툭툭 건네주는 것들이 있을 뿐. 하지만 아빠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본 사람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제일 오래 본 사람이기도 하고. 아빠가 표현해주지 않아도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진 너무 잘 안다. 그날의 담배 개수도, 나를 사랑하는 그의 크나큰 마음을 수치화 한 것이었겠지.
이런 아빠 밑에서 나는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다. 아빠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 표현도 잘하게 됐고, ‘사랑’이라는 것이 주는 큰 기쁨도 잘 알게 됐다. 아빠에겐 예나 지금이나 애정표현 하는 것이 어려운 못난 딸이지만, 아빠도 이런 나를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하나의 여담을 추가하자면, 내 이상형에 관한 것인데! 여전히 내 한결같은 이상형은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