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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Dec 27. 2021

여름비가 완성한 덕수궁 배롱나무와 석조전

겨울에 여름을 추억하는 것은 나의 자유

비가 오다 말다 한 지난여름 서울역 앞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마주한 풍경이다. 친구와 만나 덕수궁에 가기로 했는데 돌담 밖에서 덕수궁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른 들어가고 싶었다. 밖에서 마주한 풍경도 정말 멋있었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그리운 여름을 추억하는 것은 내 자유이다. 2021년이 지나가기 전에 올여름에 만난 덕수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덕수궁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오른쪽에서 작은 연못을 봤다. 연못엔 빈틈이 없이 잎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비가 내렸던 날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축축했다.


축축한 초록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름비와 초록빛 나무가 주는 감성이 있다. 검은 물감을 한 방울 탄 것 같은 초록색부터 레몬색 물감을 한 방울 탄 초록색까지. 이 연못에는 오리가 살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어지러운 곡선이 바로 오리 떼가 움직였던 흔적이다.


돌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세상의 분위기가 반전되는 듯한 느낌은 신기했다.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덕수궁에 놀러 올 때는 감상이랄 것을 딱히 못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엔 시야에 담기는 모든 장면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음으로 덕수궁을 본 날인 것 같다. 지붕 두 개가 겹치고 그 사이에 나무들이 보이는 이 사진도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그리고 건물 말고도 곳곳이 멋있었다.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행사를 진행했던 정관헌에 올라가는 길이었다. 덕수궁은 이국적인 건물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석조전 못지않게 정관헌도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검색해 보니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에 정관헌의 일부가 살짝 걸렸는데 정관헌 왼쪽에 자리한 나무도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게 굉장히 멋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된 이 건물은 석어당이다. 솔직히 나도 덕수궁을 관람할 때는 어떤 건물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마음에 드는 건물과 느낌으로 구경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기억을 상기하고, 검색해보며 나도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정관헌에서 내려오며 마주한 석어당의 뒤편이다. 석어당은 다른 건물과 달리 2층으로 지어져서 굉장히 신기했다. 그리고 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더욱 한국적이어서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석어당은 앞의 모습보다 이렇게 뒤편에서 보는 게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디서 봐도 지붕이 여러 개 겹쳐져 만들어지는 모습이 우리나라 궁궐 산책을 하며 느낄 수 있는 멋 중 하나인 듯하다.


두둥! 드디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곳, 석조전이다. 올여름 특히 덕수궁 사진이 친구들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덕수궁이 우리나라 궁 중에서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국적인 멋과 한국적인 멋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안에서 색다름을 느낄 수 있다면 기꺼이 한 번 떠나볼 것 같지 않은가?


석조전을 찍은 사진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이다. 석조전과 덕수궁의 전경을 담은 것도 물론 마음에 들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수평과 수직을 맞춰서 찍는 사진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덕수궁이 인기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배롱나무라고 생각한다. 진한 분홍색의 배롱나무 꽃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가운데에 있는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있는 석조전 서관과 꽃이 굉장히 조화롭게 찍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떨어진 배롱나무 꽃잎이 이 풍경을 완성시켜주는 것 같았다.


배롱나무 가까이에 가서도 사진을 찍어보았다. 배롱나무는 생각보다 가지가 구불구불했다. 이번 학기에 들은 식물 교양 수업에서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나는 배롱나무라고 불러주고 싶다. 나의 상상이지만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 부르면 백일홍도 서운하고, 배롱나무도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햇빛이 비출 때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날은 정말 여름비가 내린 덕수궁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촉촉한 비가 오는 날의 산책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석조전과 배롱나무를 보러 덕수궁에 많이 오는 것 같은데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석조전 근처에 있는 연보랏빛 꽃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만 보고 이름을 맞힐 수 없지만 언젠가 이름도 알게 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석조전에 직접 올라서면 이렇게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 돌기둥 사이로 배롱나무도 볼 수 있고, 준명당도 볼 수 있다. 나는 안 찍었지만 인생 샷은 덤? ㅎㅎ


석조전에서 내려와 밖으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과 함께 보이는 석어당도 감상했다.


마지막으로 석조전과 분수대, 배롱나무를 함께 구경하고 덕수궁 산책을 마쳤다. 올해 갔던 산책 중에 좋았던 곳으로는 손에 꼽을 수 있기 때문에 꼭 2021년이 가기 전에 기록해보고 싶었다. 바빠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적었지만. 혹시라도 나처럼 벌써부터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2022년 새해 여름에 덕수궁 산책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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